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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ections

to Ellen





마누라 어서오게. 천천히 둘러보시게.

애써 보잘것 없는 이까짓 블로그를 아직 주위에 공개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글이 좀 차면 사실 너에게 처음 보이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는데, 그 약속은 지키지 못했음은 이미 알고 있을터. 단지 내 가족에게, 몇 안되는 친구에게, 그리고 내 아이에게 내가 어느날 어느때 어떤 다짐으로 순간을 살았는지 조그만 기록을 남기고 싶은게 다였다. 그리 좋아라 읽은 책 한권도 일주일만 지나면 주인공 이름은 커녕 줄거리도 까마득해지는 나에게, 이곳은 여느 유행가 제목처럼 그저 '기억의 초상' 쯤이라 해두자.     모든 기억이 서둘러 잊혀지기에만 바쁜 내 연약한 감성들을 잠시나마 묶어 놓는곳, 타협하고 쇠약해져만 가는 내 가치관들이 더 초라해지기 전에,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는셈 시작한 것이 이제 제법 나에게는 일상의 아주 아늑하고 편안하게 길들여진 공간이 되어간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어린애도 아니면서 그리도 크리스마스를 좋아했던 너의 모습 기억한다. 그때는 빈말로 누가 11월부터 캐롤 듣냐고 핀잔도 주었지만 내심 그런 동심어린 네가 이뻤다. 굽이돌아 순탄치만은 못했던 우리 결혼의 짧지 않은 나날동안 그리 보기 좋았던 너의 옛모습들을 하나둘 잃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내색은 안했지만 마음 아팠고 많이도 미안했다. 십여년 이상 부부라는 허울만 믿고 서로 마음을 몰라준 지난 세월이 참으로 무심하고 안타깝다. 서른 훌쩍 넘은 우리는 아직도 아이처럼 하루하루 철들어가고 마음의 키가 자라고 있나보다. 누구 말처럼 어른은 없고 다들 어른인척 할 뿐이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또 며느리로서 한 해를 잘 보낸 너에게 고맙다는 말 전한다. 항상 입가에 웃음이 마르지 않는 Andrew가 누구보다도 너의 사랑을 듬뿍 받아 먹고 무럭무럭 자라 주니, 녀석 엄마 복이 타고 났다. 녀석이 자라서 이 다음에 니가 원하는 바,   "I have won the parent lottery." 고백하는 날이 오는것도 그리 허황된 꿈이 아닐테다. 그래서 비가 오거나 때론 매몰차게 바람이 불거나 하더라도, 더러는 날씨가 아주 개거나 세상을 뒤엎는 함박눈이 내리더라도, 언제나 늘 해처럼 빛나기를 바란다.        간혹 구름 뒤에 숨더라도 결코 사라지거나 하는것이 아니듯이.

그리하여 올해도 참 다사다난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다사다난했다 함은, 그 안에 천가지 어감들이 여울져 있어, 단어 하나로 전하는 이마다 긴 말 없이 교감하고, 추억이 상기되는 멋적은 웃음 자아내며 혹은 절로 고개가 끄덕이며, 서로의 가슴이 겹쳐지고 붉게 푸르게 멍드는것 같다함인데, 내 마음의 그런 울림이 이 계절에 비치어 네게 전해지길 바란다. 다 지나고 나면 그저 또 한해를 보냈구나 그 뿐인데, 이맘 때쯤이면 괜시리 조금 센치해지는 것에도 관대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보다. 버거운 인생, 잠시 마음이 쉬어가는 계절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구나.

Happy Christmas to you. 잊혀진 예전 너의 그 크리스마스가, 창문만 열면 문밖 어귀까지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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