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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ween Books

거꾸로 읽는 세계사 - 유시민





한국을 떠나오기 전, 서둘러 미리 찜해놓았던 책들을 모조리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정확히 총 몇권인지도 모른체, 다음날 현관문에 택배가 다녀간듯한 큰 박스상자 2개를 보고서야 조금 기겁했다. 이걸 다 어떻게 미국에 들고갈지 걱정스러우면서도,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받은 아이마냥 그리 좋을수가 없었다.


일단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슬슬 졸면서 보려고 한 권을 집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절대 가볍게 읽을만한 책이 아니었다. 지식인이자 정치인 유시민의 단연 베스트셀러로 초판이 1988년에 인쇄된 무려 20년이나 넘은 고전이며, 여전히 매년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아 올해 2011년 한해에만 21쇄가 발행되었다고 책 표지 넘겨 첫장에 버젓이 새겨있다. 책의 구성이 대부분 발췌와 인용들을 요약한 것이라고 저자 스스로 인정하고 있지만, '그것들의 출처를 밝히는 것은 너무나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어 모두 생략한다.'라는 서두와 함께 원작들의 출처를 전부 생략한 것은, 내가 아는 유시민이라는 사람에 한해서는 상당히 의외적인 일이며, 더욱이 책이 다루고 있는 민감한 내용들을 고려할때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베트남전쟁 개입에 반대하는 시위 도중 막아서는 군인들에게 꽃을 내밀며 평화를 호소하는 여인: 실제로 이날 수많은 인파가 거리로 나와 폭동을 저지하려는 군인들의 총부리에 대신 꽃을 꽂아주었다.)





처음 제목을 보고서 아마 시대를 거꾸로 되밟으며 역시간대로 세계사를 짚어보는 관점일꺼라 예상했지만 아니었다. 이 책은 철저하게 승자들의 시각에서 이해되고 설파되어 왔던 기존 교과서들의 역사적 서술들이 얼마나 많이 왜곡되어 있고, 매 시대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득권층을 상대로 싸워온 약자들의 저항의 이데올레기가 얼마나 처절했는지를, 인류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통해 재조명하고 있다. 유시민은 그 어떠한 사회 정치적 사상도 결코 절대선이나 절대악이 있을 수 없음을 누차 강조하면서 맹목적인 반공주의와 사상의 흑백논리를 전면으로 부정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세계사의 재해석은 매우 신선했고, 한편으로는 내가 상식이라고 믿어왔던 혹은 세뇌당하였던 수많은 것들이 진실과는 너무나 어긋나 있음을 한탄케 했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터에 정신대로 끌려가 온갖 수모를 겪은 조선 여인들: 그들을 무슨 훈장 쯤으로 생각하는 일본 군인이 너무나 환하게 웃으며 기념 촬영을 하고있다.)





내용에 못지않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재차 보게된 역사속의 생생한, 그러나 낯설고 이질적인 사진들이었다. 내가 거쳐온 교육 체계 안에 그 어떤 교과서에서도 보지 못했었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장면들의 연속을, 끓어오르는 분노를 삼키며 참아내야 했다. 대부분 너무 흉칙한 사진들 뿐이라 차마 블로그에 올리는 것 조차 조심스럽다.


어쩌면 사람의 천성이 어질다는 것도 내가 이미 세뇌당한 그릇된 진실일 수도 있겠다. 인류의 흥망성쇠사 속의 수많은 권력자들의 참 모습은, 오히려 사람의 탈을 쓴 악마의 모습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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