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 아무렇게나 내팽겨처져 있는 녀석의 책을 집어들었다. 아직은 무엇하나 제자리에 가져다놓지 못하는 어린아이에 불과할 뿐이다. 녀석이 아직 엄마 뱃속에 있을때 아빠라는 사람이 귀찮은 마음 겨우 참아내며 <잠언>을 한장씩 읽어준 일 이외에는, 매일 잠들기 전 한두권의 책을 읽어주는 것은 여지껏 와이프의 몫이라, 밤마다 건넛방 너머로 익숙하게 들려오는 엄마의 책 읽어주는 소리가 녀석에게, 그리고 어느새 내게도, 긴 하루를 마치는 자장가처럼 편안하다. 중간중간 어렴풋이 녀석이 무언가를 엄마에게 물어보는 소리도 들리고, 엄마를 따라 떠듬떠듬 같이 읽어보는 소리도 들려온다.
태초에 모든것이 암흙처럼 어둡기만 했던 시절, 세상을 가엾이 여긴 까마귀 한마리가 먼 바다 너머 흐릿한 불빛 하나를 찾고서는 쫓아 날아갔더니, 그곳에서 하늘님의 공주를 발견하고는 그녀가 마시던 물잔에 작은 솔잎으로 변하여 빠져들고, 솔잎을 먹은 공주는 그후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된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집안 한구석에 있던 환한 빛을 발하는 상자를 가르키며 "까..까.." 원한다는 소리를 내었다. 결국 상자를 받은 아이는 그 안에 있던 빛나는 구슬을 보더니 홀연히 다시 새가 되어 그 구슬을 물고서는 하늘로 올라 저 높은 곳에 태양을 놓고 내려온다는 이야기다.
구전으로만 내려온다는 어느 인디안 부족의 전래동화를 모티브로 각색된 이 책에는, 내가 배워온 늘 불쾌하고 불길한 징조로만 여김을 당했던 우리 민속의 까마귀와는 판이하게 다른, 오히려 영민하고 선구적인 예언가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이런 내 상식과의 괴리감 때문에 다시금 절망하며, 내가 믿고 있는 그 어떤것이 과연 영원토록 불변하는 진리인가를 자문하게 된다.
아빠처럼 스스로에 닫힌 고집스런 사람이 되지 말라고, 녀석를 불러다가 무릎에 앉히고는 조곤조곤 첫장부터 알아듣게 설명을 해주었다. 분명 엄마가 읽어준 책이였을텐데도 마치 처음듣는 이야기처럼 얌전히 경청하는 녀석이 조금 고마웠다.
"Andrew, so you know what was inside the box?"
"yeah, the sun!"
아는 이야기를 다시 들어도 그때마다 매번 새로운, 나도 그런 백지같은 하얀 마음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Between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꾸로 읽는 세계사 - 유시민 (0) | 2011.11.17 |
---|---|
Fall of Giants - Ken Follett (0) | 2011.10.02 |
The Quants : Scott Patterson (0) | 2010.05.21 |
무소유 : 법정 스님 (0) | 2010.03.22 |
The Historian : Elizabeth Kostova (0) | 2010.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