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내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유시민마저 정계를 떠나면서, 자연스레 뉴스와 좀 거리를 두고 살다가,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눈에 띄는 사람 하나가 생겼다. 여당 텃밭으로 여겨지던 충남에서 도지사 재선에 성공한 안희정이다. 호들갑 떨기 좋아하는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차기 강력한 대권후보 박원순의 예정된 런닝메이트로 일찌감치 점찍고 있다.
과거 송창식의 <왜불러>가 반말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던 어이없던 시절, 고등학생 주제에 불온서적 읽다가 퇴학 당하고, 겨우 검정고시로 고려대 들어가서는 또 데모해서 감빵 가고, 후에는 참여정부 시절 불법 자금건 때문에 노무현의 하수인으로 기꺼이 독박을 쓰고 또 감옥살이를 하고 나왔다. 요즘 한국의 대세 키워드가 '의리'인데, 이 양반의 의리와 과거 5공 청문회 시절 아줌마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던 장세동의 의리는 같은걸까. MB가 재임중 왜 자신에게는 안희정 같은 인물이 없나 한탄했다니 코메디가 따로 없다.
Q: 노무현 대통령이 뭐가 그렇게 달랐습니까. 그 이전 정치인들과?
모든 것이 다릅니다. 품성, 합리주의, 타인에 대한 인격적 예의, 배려. 모든 것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비서라고 할지라도 그 책임과 권한을 존중해주죠. 기존의 정치인은요, 비서들에게 그냥 지시하고 비서는 그냥 하는 거예요. 근데 노무현 대통령은 회의가 끝나면 회의에서 어떤 내용이 오고 갔는지 비서들에게 와서 보고를 해요. 내가 당신들에게 보고를 해 줘야지 당신들이 일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그래서 나는 당신들에게 보고를 한다. 직무와 관련되어서 정확하게 상황들을 알려주고, 물어보면 모든 일을 오픈해줬어요. 기존의 정치인들은 절대 그런 게 없죠. 감히 물어보기도 어렵고. 절대 안 그럽니다. 뭐 그런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노무현 대통령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정치인이었어요.
90년 초반에 나왔던 얘긴가. 그런 이야기가 있었어요. 민주화 양아치가 더 심하다는. 뭐 쓰면 뱉고 달면 삼키고 이리 붙고 저리 붙고 하는 정치공학적인 행보를 보면, 오히려 민주화 운동하던 사람들이 더 심하다는 소리죠. 이론을 만들어내던 영악한 사람들이 스스로 정당성을 막 만들어내서 이리저리 가져다 붙이는데, 노회한 정치인이 볼 때도 그게 참 한심해서 민주화 양아치가 더 심하다는 표현이 나온 거죠.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무슨 진보를 하느냐. 그런 정치만 보다보니까 제가 모든 게 회의스럽고 그러던 시절인데, 그때 노무현 대통령이 나에게 뭐라고 했냐면,
“희정씨 그거 참 어려운 주제인데. 그게 그런 거 같아. 이런 말 있잖아.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사람은 안 변하는 것 같아 내가 볼 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그러니까 개체로써의 인간은 안 바뀐다는 거야. 그런데도 인류는 진보한다는 것이 신기한 것 아니냐.”
그렇게 말을 하는데, 독백처럼, 어, 그게 나한테는 몇 년을 고민하던 문제에 답을 줬어요. 그때 무슨 득도한 것처럼 중요한 대화를 주고받았던 건 전혀 아니에요. 그냥 독백처럼 한 말이에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보니까 그런 말들이 저한테는 남는 거예요. 인간이 대한 믿음이랄까. 그 대통령의 그 말씀이 지금까지 남는 거라.
개체로써의 인간은 변하지 않지만 그 개체가 모인 집단으로써의 인류는 늘 진보해 왔다. 그것이 진보주의자의 역사관 아닐까. 그렇다. 사람 하나하나에 대해 실망할 일이 아니다. 사람 하나하나에 실망하고 신념을 꺾지 말고, 인생은 뭐 다 그렇게 사는 거라고 포기하지 말자. 우리가 나이 먹으면서 사회화 되는 첫 번째 과정이 인간에 대한 실망을 조직하는 거예요. 난 이걸 사회화 과정의 첫 번째라고 봐요. 별 수 없는 거야 인간은. 똑똑한 체 하지 말고 적당히 사는 거야. 그렇게 인간에 대한 실망을 학습 시키는 것이 사회화가 되는 가장 첫 번째 내용 같아요.
인간에 대해 실망하고 나면 사람들이 적당히 살기 시작해요. 그렇게 적당히 살기 시작하면서 시민사회와 공동체적 관념도 없어지고, 불 꺼진 뉴욕, 정전된 뉴욕 밤거리 같은 인생 속에서 자본주의적 탐욕에 의해 재편되어 가는 거죠. 그렇게 인간에 대한 실망을 느꼈던 게 제가 처했던 94년까지의 상황이에요.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인간에 대한 희망을 제게 다시 불러일으킨 거죠.
- 2010년 인터뷰 中 발췌
참으로 희안한 일이다. 종종 관심이 생기는 정치인들은 죄다 노빠이다. 이쯤되면 내 눈에 뭐가 끼었나 싶다.
- 에필로그
블로그를 하면서 나만의 몇가지 원칙들을 지키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최대한 종교나 정치색이 들어나는 글은 자제하자는 개인적 다짐도 들어있다. 아무래도 사적인 공간이고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 몇만이 드나드는 곳에서까지 쓸데없는 이념적 표방은 부질없다 생각하고 있다. 몇해 전 후쿠시마 원전 사태 당시 조목사의 부적절한 언행을 망언이라 표현했던 내 미천한 블로그 글 하나까지 어찌 찾아 뒤졌는지, 얼마 뒤 교회측에서 명예훼손이라는 이유로 게시물을 삭제 당했다. 그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는 둘째치고, 언제부터 교회가 명예를 지키는 단체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커녕 썩은내가 물씬 난다. 정식으로 항의 메일을 장문으로 적어보내려다 그나마 그 시간도 아까워 이내 관두었다. 다시금 21세기 대한민국의 씁쓸한 현주소만 재차 각인한 체로.
언제부터인지 나는 부모님과 가급적 정치 이슈에 관한 대화를 피하고 있다. 오랜 세월을 몸으로 겪어보니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마저도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것은 설득의 영역에 포함될 수 없고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을 남긴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반농담처럼 우리 어머니에게 아직도 빨갱이 소리를 얻어먹는 자칭 '중도'라서 더 몸을 사린다는 표현이 적확하겠다. 아버지 역시 보수 성향이 짙은 분이지만 중립을 지키시려 노력하시고 반대의 목소리도 귀기울이신다.
어머니가 뜬눈으로 개표방송을 지켜보시며 마침내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크게 환희하시던 다음날 아침, 난 조용히 내 카톡 프로필을 수정했었다.
"49%, almost."
어머니는 시대의 영웅을 원하시고, 난 그들에게 어떤 비범함이나 진정성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딱 그 차이다.
존경심의 대상이 다른 것. 그걸 거창하게 세대차이라고 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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