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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새해인사 이제 신혼인 동생 내외는 새해 첫날의 좋은 기운을 맞고자 제주도에 내려간 모양이다. 그곳에서 갑작스레 문자로 보낸 새해 인사 사진들에 한동안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중에 서울에서 보내온 고화질의 사진들보다 나는 처음에 핸드폰으로 받았던 이 흐릿한 사진들의 여운이 오래토록 가시지가 않는다. 나 역시 마음으로 그들에게 큰 맞절을 올린다. 임진년(壬辰年) 흑룡의 해, 몇 해전에는 황금돼지 띠라고 그 난리를 치시더니, 어머니는 이래저래 우리와 동생내외가 아이를 낳아야 할 구실이 한가지 더 생기셨다. 그러니까 60년 주기가 정확히 일곱번 거슬러 올라 임진왜란이 있었다고, 아버지께서는 새해 덕담으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유비무환(有備無患) 정신을 당부하시었다. 준비없는 승리가 있을 수 없다는 지극히 순리로운 이치를 .. 더보기
Christmas Morning 이른 아침부터 녀석이 나를 흔들어 깨운다. 보나마나 선물 풀어보자고 보채는건데 오죽이나 오늘을 기달려왔을까 녀석 심정을 헤아리듯 곤한 몸을 일으켰다. 저 역시 아직 잠에서 덜 깬 졸린 눈을 애써 비벼가며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제 선물 보따리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내뱉던 마냥 행복한 크리스마스 웃음소리. 예수님 생일에 왜 선물은 자기가 받는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나이. 산타 할아버지는 대체 언제 일일히 자기가 원했었던 장난감들을 하나같이 다 기억하고 갖다 놓았는지 녀석은 굳이 묻지도, 의심도 않는다. 나는 그런 녀석이 오래오래 부질없는 근심걱정 없어도 되는 그냥 어린아이로 내 곁에 남아있었으면 하는 바램만을 할 뿐이다. 자기는 왜 동생이 없냐며 평상시 투덜거리던 녀석이 오늘은 그것도 다 싫단다. "Why,.. 더보기
제주도 한국오느라 어지간히 지겨웠던 비행기를 또 다시 탑승. 그러나 처음으로 와보는 제주도라, 정말 모처럼 온식구가 함께하는 여행길이라, 기대 반 설레임 반. 고맙게도 모든게 신혼여행까지 뒤로 미룬 동생 녀석의 아이디어였다. 2주간 한국에 머무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맛집 중 하나로 주저없이 제주도 를 꼽겠다. 그 이름처럼 평범하기 그지없어 보이던 아담했던 식당안으로 들어서자 벽벽마다 빼곡히 명사들의 친필을 담은 글귀들이 손님들을 반겼다. 이곳 제주에서도 별 인기없던 바보 노무현의 담백한 한 마디가 메아리처럼 가슴을 울렸다. 그 바로 밑에 MB가 다녀간 사진을 덜컥 붙여놓은 건, 대체 주인장이 무슨 심보였는지 통 알 길이 없었다. 기분 상하던 찰나, 한상이 거하게 차려지더니 절로 감탄이 우러났다. 해륙진미의 .. 더보기
마음빚 가족이 하나 더 가까이 있다는 것이 부모님에게는 이리 큰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진작에 몰랐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이 무던히 이어지던 지난 밤, 도데체 몇 병의 와인들을 새로 꺼내 열었는지도 아무도 기억에 없다. 동생 내외가 떠나기 전 마지막 자리라는 생각에, 모두들 못내 남은 아쉬움들을 못이기는 듯 선뜻 자리를 먼저 뜨는 사람이 없었다. 늘상 헤어짐이란 것이 그렇듯,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가슴앓이를 매번 주고, 그 쓰리는 뒷맛은 목젖을 타 흘러내리는 와인처럼 매번 생생하고 진하기만 하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끝내, 고맙다는 말을 해주었다. 식구들에게 겨우 눈치를 주고 단 둘만의 몇 분을 갖고서야, 그 아이에게 한번은 해 주었어야 했던 말, 어려웠던 몇 마디를 힘겨이 꺼냈다. 동생의 지난 날.. 더보기
저울질 동생 녀석이 오랜만에 미국에 휴가차 나왔다. 그러나 결혼 상대로 생각하는 처자를, 그것도 구정에 맞춰 데리고 온다는 계획을 막판 오기 몇일 전에서야 알린 것은 조금 뜬금없었다. 일전에 아버지께서는 한국을 왕래하시면서 한두 차례 면식이 있었던 듯 한데 가족들 앞에서는 전혀 언급을 피하시고, 그나마 간접적인 정보 루트인 우리 어머니 지방 통신에 따르자면, 당신께서 크게 마음에 차지 않으신다는 혹평에 가까운 쪽이었다. (그에 대한 이유는 아버지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취지에서 생략한다. 실은 그것들은 지면으로 차마 발힐 수 없는, 나로서 쉬이 납득하지 못하는 아버지만의 세계안에 난해한 것들이며, 설령 내 생각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하여 예전처럼 무작정 그 연륜의 눈을 무시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뭐 며느리감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