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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두번째 선물 "A mother's love for her child is like nothing else in the world. It knows no law, no pity. It dares all things and crushes down remorselessly all that stands in its path." - Agatha Christie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아내는 둘째를 가졌다는 말을 넌지시 건네왔다. 애써 덤덤한 척은 했지만 흔들리던 아내의 목소리에서 또 다시 생명을 잉태한 어머니의 숭고한 떨림이 전해져 왔다. 물끄러미 그 얼굴을 바라보다 진정 아내가 기쁘게 바라던 임신이었음을 확인하고서야 이내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무리 시대가 시대더라도 일단 조금은 노산(老産)이라 먼저 아내의 건강이 염려되기도 .. 더보기
Snow Valley 녀석은 내가 얼마나 이 날을 고대해 왔는지 알 턱이 없다. 작년에도 데리고 왔다가 끝내 한살만 더 먹으면 시키자고 벼르던 스키 강습. 지레 겁이라도 먹을까봐. 행여 다치기나 할까봐. 의외로 흥미를 느끼지 못할까봐. 아이들 수업에 부모들이 방해된다 쫓겨나듯 그리 먼 발치에서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꼭 훗날에 오늘을 추억하고, 분명 아빠를 고마와할 날이 올꺼다, 이녀석. 단조롭기 그지없던 도심을 모처럼 벗어나. 꼬불거리던 숲속 어느 아담한 산장에 몇일 묵으면서. 밤이면 벌건 벽난로에 장작 타던 소리. 녀석이 잠들 무렵 이내 방안을 가득 채우던 마쉬멜로 굽던 소리. 거진 십년을 초보자 코스에서 낙엽밖에 탈 줄 모르던 몸치 아내는, 마침내 Toe Edge 를 연마하고 중급 코스 입문. 이제서야 새로운 세상을 보았.. 더보기
Christmas Present 늦은밤 녀석이 잠이 들자 부랴부랴 미리 숨겨 놓았던 크리스마스 선물들을 꺼내어 포장을 하기로 했다. 이쁘게 포장해서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놓아두면 이른 아침에 녀석이 일어나 지난밤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갔다며 어쩔줄을 모른체 놀란 웃음 환하게 지을 상상을 하니 이내 잠시나마 귀찮았던 생각마저 사라졌다. 생전에 제대로 선물 하나 포장해 본 일이 드문 나는 무작정 곁눈질로 아내를 따라 서툰 가위질을 흉내내기에 급급했다. 엉성하기 짝이 없는 내 솜씨에도 아내는 별 말이 없다. 마음이 더 중요한 거니까 괜찮아라며 속으로 말해주는 것이 어찌 내게까지 들려오는 듯 했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열살이 체 되기전에 산타가 허구임을 알게 되어버린다는데, 유난히도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녀석에게 이제 그 설레임이 몇번 안 남.. 더보기
내동생 장가가던 날 "Love is blind. Marriage is the eye-opener." - Pauline Thomason 그리도 좋은가. 요즘 것들은 이런날에 긴장도 하지 않는다. 사실은 부러웠다. 한강에 있던 무슨 선상 웨딩홀. 결혼하기 참 좋았던 날씨. 하긴 비오는 날이었다한들 뭐 어땠으리. 다 좋은거지. 어느새 큰 며느리에게 마음을 의지하시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새 각시 첫 삼년 혼쭐나게 교육시키시겠다던 그 시어머니의 옛 엄포는, 그렇게 세월속에 찬찬히 묻혀버렸다. 집안의 큰 날에 제법 맏며느리 포스를 풍기던 아내를 바라보며. 너도 예전에는 새파랗게 젊었던 날이 있었단다, 나즈막히 귀에 대고 속삭여 주고 싶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의젓한 모습으로 Ringboy로 데뷔한 다섯살 난 꼬마 앤드류. 꼴에 한.. 더보기
포토제닉 한국에서 찍어온 사진들을 그냥 대충 훓어만 보는데도 벌써 긴밤이 되었다. 주위에서도 이번에 어머님 얼굴이 참 좋아보이신다는 인사을 종종 받곤 했는데, 다시금 보니 표정들이 화사하신 것이 사진들을 무던히도 잘 받으셨다. 어떤날엔 여왕처럼 때로는 바닷사람처럼. 늘 어머니처럼 혹은 할머니처럼, 그러나 아내처럼. 막 50대처럼 또는 60대처럼, 간혹 40십대처럼. 여전히 여자처럼. 어머니에게 女子가 남아있다. 여행길이 고단하셨는지 돌아오셔서는 조금 편찮으시다. 그간 아들이 체 보지 못했던 어머니의 숨겨놓으신 젊음들을 감사하게도 카메라가 많이 담아 주었다. 사진들 직접 보시면 새 기운이 조금 나실테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