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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국오느라 어지간히 지겨웠던 비행기를 또 다시 탑승. 그러나 처음으로 와보는 제주도라, 정말 모처럼 온식구가 함께하는 여행길이라, 기대 반 설레임 반. 고맙게도 모든게 신혼여행까지 뒤로 미룬 동생 녀석의 아이디어였다. 2주간 한국에 머무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맛집 중 하나로 주저없이 제주도 를 꼽겠다. 그 이름처럼 평범하기 그지없어 보이던 아담했던 식당안으로 들어서자 벽벽마다 빼곡히 명사들의 친필을 담은 글귀들이 손님들을 반겼다. 이곳 제주에서도 별 인기없던 바보 노무현의 담백한 한 마디가 메아리처럼 가슴을 울렸다. 그 바로 밑에 MB가 다녀간 사진을 덜컥 붙여놓은 건, 대체 주인장이 무슨 심보였는지 통 알 길이 없었다. 기분 상하던 찰나, 한상이 거하게 차려지더니 절로 감탄이 우러났다. 해륙진미의 .. 더보기
찰나를 담아 불변을 바래본다 Du fehist mir. 독일어로 '보고싶다'라는 말은, 직역하자면 '너에게 내가 없다' I miss you. 영어로 '보고싶다'라는 말은, 직역하자면 '나에게 니가 없다' "아빠, why is 이모 wearing that pretty dress?" 물끄러미 사진을 바라보던 녀석이 의아한듯 물어오는 것이 괜시리 미소를 머금게 한다. "Because it is the prettiest day of her life." “Photography takes an instant out of time, altering life by holding it still.” - Dorothea Lange (1895-1965) 동생 내외의 야외촬영 사진들을 찬찬히 바라보던 아내는, 그들이 마치 화보같다며 부러움을 숨기지 않았.. 더보기
2010 Sunflower Carol 이모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책을 엄마와 그대로 따라해 본다. 해바라기 씨를 사다가, 돌아와서는 뒷마당 잔디밭 흙을 조그만 손으로 캐서 담았다. 짓궂게도 잦았던 이번 겨울비 덕에 몇일이나 흙속에 숨어 지내던 지렁이 한마리가 나타나더니, 녀석은 놀라서 들던 삽을 내던지고서는 달아나 버린다. 애궂은 계란 한판을 깨서 화분을 만들고, 예정에 없던 계란말이가 저녘상으로 올라온다. 너무 적게도, 너무 많이도 안되고 딱 적당하게 물을 주고 좋은 햇볕을 맞으면 아기같은 씨가 죽지 않고 잘 자란다는, 책 속에 그 말이 사실일지는 두고 보아야 알 일이다. 왜 하필 오늘이어야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일년, 흐트려 놓기만 한 많은 일들을 차분히 정리하던 오늘, 평소보다도 말을 아끼고 조용히 하루가 마치기.. 더보기
거룩한 부담감 by Rodin (1902) "꿈이 있습니까?" 하루는 교회에서 언제나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다니시면서도 속깊고 진중하기로 평판이 좋으신, 청년부 사역을 담당하시는 부목사님 한분이, 5학년 여자아이들을 맡고 주일 교사로 섬기고 있는 와이프에게 물으신 모양이다. 학창 시절 윤택하지 못했던 가정에서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며 지내야했던 와이프는, 불우한 환경 때문에 제 능력만큼 발휘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자선 사업가가 되기를 소망하며, 그렇기 위해서 '세상적으로도' 지금보다 훨씬 더 성공해야 된다는 조금은 이기적인 다짐을 하며 산다고 답했단다. "그것은 자매님이 안고 살아야 할 거룩한 부담감입니다." 거룩한 부담감이라. 설령 크리스챤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두가지씩은 남몰래 짊어지고.. 더보기
주호의 꿈 "대한민국은 빈곤한 이들이 끔찍한 가난의 늪에서 벗어날 확률이 고작 6%에 지나지 않는 빈곤의 함정에 깊이 빠진 나라다." - 김대일 서울대 교수 전에는 아니었는데, 아마도 나역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그 이후에야 생각이 변한듯 싶다. 기본 생존권마저 위협받는 아이들을 보노라면, 가여운 심정의 측은함보다는 방치된 아이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못난 부모의 탓인가, 허울만 있는 기괴한 자본주의의 폐단인가. 이 아이에게 언젠가 꿈은 꼭 이루어질거라 얘기해주고 싶지만, 마음만큼 입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만약 내 아이였다면, 나는 누구를 원망할건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