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flections

거룩한 부담감



<The Thinker> by Rodin (1902)


"꿈이 있습니까?"

하루는 교회에서 언제나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다니시면서도 속깊고 진중하기로 평판이 좋으신, 청년부 사역을 담당하시는 부목사님 한분이, 5학년 여자아이들을 맡고 주일 교사로 섬기고 있는 와이프에게 물으신 모양이다. 학창 시절 윤택하지 못했던 가정에서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며 지내야했던 와이프는, 불우한 환경 때문에 제 능력만큼 발휘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자선 사업가가 되기를 소망하며, 그렇기 위해서 '세상적으로도' 지금보다 훨씬 더 성공해야 된다는 조금은 이기적인 다짐을 하며 산다고 답했단다.

"그것은 자매님이 안고 살아야 할 거룩한 부담감입니다."


거룩한 부담감이라. 설령 크리스챤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두가지씩은 남몰래 짊어지고 살아가야 되는 마음속의 불편함을 목사님은 그리 표현하셨다. 비지니스를 핑계로 주일예배를 못 드린지 어언 6개월이 넘어가면서 밀려오는 죄책감, 이제는 내 몸에 인이 박혀 도저히 끊지 못할 것 같은 담배, 그 냄새가 자옥히 옷에 배어 불현듯 내 아이가 어느날 이게 무슨 냄새야 물어볼까 노심초사하는 씁쓸한 중독. 늘 옳바르지 못한 스스로의 모습에서 오는 자조감. 나는 이런 것들을 인정하기 싫더라도 단지 '죄'라는 단어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세상에는 말을 참 잘하거나 혹은 맛깔스럽게 글을 풀어낼 줄 아는 재주꾼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들의 현란함에는 감동이 없다. 논리 정연한 자기 합리화는 말이 길어지고, 바른 생각은 익으면 익을수록 말이 짧아진다. 단 한번 들었는데도 멍하게 망치로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이 뇌리에 박히는 말들은, 누군가의 비단 재치있는 애드립으로 생기는 것이 아닐거다. 단 한마디 안에서도 그 성찰자의 오랜 고심을 엿볼수 있는 그런 말을 나는 언제나 갈망하며 살기를 원하고, 그런 참된 mentor이 곁에 한 명쯤 있었으면 하며 이 나이에도 아직 바라고 있다.






'Reflections' 카테고리의 다른 글

Chan Ho Park 예찬  (0) 2010.10.07
인생은 성적순  (0) 2010.09.24
Ready, Set, Go.  (0) 2010.09.13
그냥 걷기  (0) 2010.07.26
슬럼프  (0) 2010.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