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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선의(善意)> 박경철 저는 우여곡절 끝에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잊을 수 없는 한 환자가 있죠. 40대 초반의 여자였는데 위암이었죠. 하지만 이게 전이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어요. CT가 그때만 해도 3cm 단위로 잘라져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암이 작으면 잘 보이지 않죠. 일단 보고를 드려야 했죠. 아침에 주임과장에게 이런 환자가 있었고 전이가 확인이 안됩니다 하고 보고를 드렸더니 배를 먼저 열어보고 전이가 되어있으면 닫고, 안 되어 있으면 수술을 하라고 하더군요. 근데 환자 보호자에게 동의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이런걸 환자에게 이야기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가족과 보호자를 이야기해봤더니 남편은 죽었고, 시댁식구들은 연락이 끊어졌대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수 없어 본인에게 직접 말씀을.. 더보기
다니엘 한살 우리 지호, 한살 생일 축하해. 엄마가 차린 돌상은 마음에 드니? 요즘 들어 부쩍 니가 아빠를 많이 닮아간다는 얘기를 듣곤 하는데 괜히 기분 좋다. 형아와 비슷한듯 싶다가도 너무 다른 니 모습, 커가면서 어떻게 변할지 과연 궁금하다. (잠투정 많은건 전혀 안 비슷해. 애기가 왜 잠을 안자니.) 그래도 잘 먹고 잘 웃고 벌써부터 형아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면서, 형아 장난감 하나둘씩 뺏는 재미가 쏠쏠하지? 니가 아직 애기라 형아가 봐주는거다. 실은 형아도 니가 얼른 커서 너랑 같이 놀고싶데. 엄마는 니가 머리가 꽤 좋을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내비추는데 나중에 두고 보자. 지금은 그냥 무럭무럭 자라만 다오. 아무 걱정없이. 염려없이. 더보기
아..빠.. 이제 일곱달이 되어가는 둘째녀석의 최근 사진이 아닌, 첫째 앤드류가 그 무렵이었을 적, 그러니까 한 6년쯤 된 사진이다. 세월속에 차곡차곡 쌓여버린 수만장의 비좁은 사진들 사이를 컴퓨터로 뒤적거리고 있자니 생각보다 한참이나 걸렸다. 반면 와이프는 책장 모퉁이에 가지런히 날짜별로 정리되어 있던 첫째 녀석의 오래된 사진첩들 중에 하나를 금새 집어 내게 건네주었다. 아날로그는 때로는 이처럼 당혹스럽게 고마울 때가 있다. 이건 해도해도 너무 똑같잖아. 잊었던 옛 사진들 숲을 헤매는동안 조금 어안이 벙벙했다. 너무 닮은 두 녀석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라기보단 살짝 소름이 끼쳤다. 그외에는 모든것이 낯설고 다르다. 먼지나는 카펫을 전부 뜯어내고 일이층 마루공사를 한 것도 이 후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냥 갖다버.. 더보기
Daniel Julian Daniel 지호 Chung. 둘째야 안녕. 네 이름 마음에 드니. 실은 엄마는 네가 딸이기를 간절히 바래서 원래 Clair 이라는 이쁜 여자아이 이름까지 지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단다. (솔직히 아빠도 아주 조금^^ 딸 바보가 되고픈 욕심이 있긴 했는데.) 지난달에 초음파 사진속에 아직 콩알만해도 네 고추가 선명히 보이는데도 엄마는 인간의 눈은 믿을것이 못된다면서 끝까지 부정하며 매일밤마다 딸 주시기를 기도드렸는데, 이제는 네가 건강하게 엄마 뱃속에서 잘 자라주고 있어 감사한 마음뿐이란다. 네 할아버지 할머니 때만 해도 시집와서 아들 못 낳는 며느리는 무슨 죄인 취급 받듯 눈치도 보고 그랬는데 세상 참 많이 변했지? 참 넌 아직 세상이 뭔지도 모르지 아마. 나중에 알테니 그냥 좋은거라 생각해... 더보기
두번째 선물 "A mother's love for her child is like nothing else in the world. It knows no law, no pity. It dares all things and crushes down remorselessly all that stands in its path." - Agatha Christie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아내는 둘째를 가졌다는 말을 넌지시 건네왔다. 애써 덤덤한 척은 했지만 흔들리던 아내의 목소리에서 또 다시 생명을 잉태한 어머니의 숭고한 떨림이 전해져 왔다. 물끄러미 그 얼굴을 바라보다 진정 아내가 기쁘게 바라던 임신이었음을 확인하고서야 이내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무리 시대가 시대더라도 일단 조금은 노산(老産)이라 먼저 아내의 건강이 염려되기도 .. 더보기
Snow Valley 녀석은 내가 얼마나 이 날을 고대해 왔는지 알 턱이 없다. 작년에도 데리고 왔다가 끝내 한살만 더 먹으면 시키자고 벼르던 스키 강습. 지레 겁이라도 먹을까봐. 행여 다치기나 할까봐. 의외로 흥미를 느끼지 못할까봐. 아이들 수업에 부모들이 방해된다 쫓겨나듯 그리 먼 발치에서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꼭 훗날에 오늘을 추억하고, 분명 아빠를 고마와할 날이 올꺼다, 이녀석. 단조롭기 그지없던 도심을 모처럼 벗어나. 꼬불거리던 숲속 어느 아담한 산장에 몇일 묵으면서. 밤이면 벌건 벽난로에 장작 타던 소리. 녀석이 잠들 무렵 이내 방안을 가득 채우던 마쉬멜로 굽던 소리. 거진 십년을 초보자 코스에서 낙엽밖에 탈 줄 모르던 몸치 아내는, 마침내 Toe Edge 를 연마하고 중급 코스 입문. 이제서야 새로운 세상을 보았.. 더보기
법치(法治)와 정의(正義) : 김귀옥 판사 요즘 이쪽에 관련된 서적들과 동영상들을 즐겨 찾아보고 있는데 어제 경인일보에 근래 접하기 힘들었던 따뜻한 휴머니즘을 다룬 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것도 다름아닌 썩어 버릴대로 썩은 줄로만 알았던 한국 법조계의 일화여서 더욱 그 감동이 컸다. 주인공은 서울가정법원 김귀옥 부장판사이다. "이 아이는 가해자로 재판에 왔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삶이 망가진 것을 알면 누가 가해자라고 쉽사리 말하겠어요? 아이의 잘못이 있다면 자존감을 잃어버린 겁니다. 그러니 스스로 자존감을 찾게 하는 처분을 내려야지요." 그러면서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렴. 자, 날 따라서 힘차게 외쳐 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생겼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라고 A양에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