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쪽에 관련된 서적들과 동영상들을 즐겨 찾아보고 있는데 어제 경인일보에 근래 접하기 힘들었던 따뜻한 휴머니즘을 다룬 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것도 다름아닌 썩어 버릴대로 썩은 줄로만 알았던 한국 법조계의 일화여서 더욱 그 감동이 컸다. 주인공은 서울가정법원 김귀옥 부장판사이다.
"이 아이는 가해자로 재판에 왔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삶이 망가진 것을 알면 누가 가해자라고 쉽사리 말하겠어요? 아이의 잘못이 있다면 자존감을 잃어버린 겁니다. 그러니 스스로 자존감을 찾게 하는 처분을 내려야지요." 그러면서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렴. 자, 날 따라서 힘차게 외쳐 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생겼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라고 A양에게 따뜻하게 말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A양이 나직하게 "나는 세상에서…"라며 입을 뗐다. 그리고 판사를 따라 점점 더 크게 외쳤다. A양은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고 외칠 때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법정에 있던 A양의 어머니도 울었고 재판 진행을 돕던 참여관도, 법정 경위의 눈시울도 젖었다.
(기사 링크 :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521242)
열여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이미 14건의 절도 폭력 전과가 있던 어느 한 여학생에게 가중처벌을 커녕 아예 불처분 결정을 내린 것은 단지 법률적인 관점으로는 조금 의아해 할 노릇이다. 설령 그 학생이 집단 폭행이라는 무시무시한 정신적 고통을 이유로 일탈행동 했음을 감안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불처분이라는 법률용어에 가려져 오역된 김귀옥 판사의 대인다운 진정한 '처분'이야말로 과연 법조인들이라 불리우는 자들이 무엇을 해야되는 사람들인지를 다시금 상기시키고 있다고 본다. 울먹이며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라고 외친 그 소녀의 머릿속에는 그때 무슨 수천가지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지나쳤을까. 처벌만이 목적인 사회에서, 하물며 죄값까지도 돈으로 살 수 있는 위대한 자본주의 산하의 법적 불평등이 버젓이 용인되는 세상에서, 왜 O.J. Simpson 이 무죄고 최철원이 집행유예로 석방되는지 한탄하는 것은 현실 감각이 없는 지극히 순진한 발상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Michael Sandel 교수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법의 진정한 힘은 구속력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양심을 움직여야 되는 것이고, 그것이 진정 법치(法治)라면 이런 판결문은 예외적이거나 감동의 소스가 아닌 평범한 기사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만큼 우리가 바라는 세상과 차가운 현실은 지나치게 엇갈려 있다. 나는 그 학생이 또 더 큰 죄를 짓고 다시 끌여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김귀옥 판사의 불처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혹은 비판도 받을까.
그러나 나는 다른 시나리오를 소원해 본다. 그 아이가 제자리로 돌아와 먼 훗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평범한 엄마가 되었을때 이제 막 사춘기를 접하는 자기 딸에게 수십년 전 오늘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이 흐릿하게 떠오른다.
"자, 엄마를 따라해 보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생겼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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