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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ections

저울질





동생 녀석이 오랜만에 미국에 휴가차 나왔다. 그러나 결혼 상대로 생각하는 처자를, 그것도 구정에 맞춰 데리고 온다는 계획을 막판 오기 몇일 전에서야 알린 것은 조금 뜬금없었다. 일전에 아버지께서는 한국을 왕래하시면서 한두 차례 면식이 있었던 듯 한데 가족들 앞에서는 전혀 언급을 피하시고, 그나마 간접적인 정보 루트인 우리 어머니 지방 통신에 따르자면, 당신께서 크게 마음에 차지 않으신다는 혹평에 가까운 쪽이었다. (그에 대한 이유는 아버지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취지에서 생략한다. 실은 그것들은 지면으로 차마 발힐 수 없는, 나로서 쉬이 납득하지 못하는 아버지만의 세계안에 난해한 것들이며, 설령 내 생각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하여 예전처럼 무작정 그 연륜의 눈을 무시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뭐 며느리감으로 우리 아버지 눈에 단번에 흡족해 하실만한 처자가 지구상에 과연 존재는 할까라는 의구심은 머언 옛날 이미 팩트로 수렴되었지만서도, 암튼 그덕에 몇년 만인지 기억도 없는 그리웠던 동생의 얼굴을 대하게 될 기대감보다는 어느덧 가족들의 관심은 온통 예비 제수씨 후보에게 쏠려진 것은 어느 정도 순차된 일이었다. 제아무리 지금은 딸처럼 사랑받는 내 와이프 본인도 역시 젊은 날에 낯선 시댁의 장남과 멋모르고 결혼하여 며느리 유예기간 3년을 무사히 마치고 전역했던 경험자로서, 장차 올케나 다름없는 형님이 될 자신의 위치에도 조금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나는 아무쪼록 최대한 지나가는 말처럼 들리도록, 모두들 색안경을 벗고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평가하자는 다짐 아닌 다짐을 넌지시 내비쳤다.


비록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따라붙는 것이 혼례이긴 하나, 자식의 배우자에 관해서만은 한국 부모들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부모들은 없다고 봐야한다. 물론 그 바탕에는 자식에 대한 무한적인 사랑만이 근간으로 자리잡고 있다손 치더라도, 가끔 억지스러울 정도의 과도한 자식 사랑에는 반드시 쓴 맛이 나기 마련이다. 나 역시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 당사자들이 되어 부모로서의 힘든 결정을 내려야 될 날이 언젠가 오겠건만, 아직까지도 나는 여느 부모와는 다를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혹은 순진한 착각을 하고 있다. 체포된 현행범에게마저도 적용되는 무죄추정의 원칙과는 달리 모든 사윗감 며느리감들에게는 일단 유죄(有罪)추정의 원칙이 따른다. 나는 이런 불필요한 세습이 양반과 상놈이 피를 섞는 일을 혐오시하던 민족 봉건주의의 역사적 잔재라고 생각한다. 씁쓸하게도 오늘날에는 모두가 양반이고 내 자식말고는 다 상놈으로 보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다. 허나 속물스러운 부모들의 마음, 그 안을 잘 들여다보면 결국 자신들의 아들딸들이 더 잘나서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을 뿐, 실은 자식들의 못난 구석들을 누구보다도 속속들이 잘 알기에, 그 모자란 부분들을 조금이라도 더 훌륭한 배우자가 메워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고 봐야한다.


구정이라 미국에 계시는 친지들을 집으로 다 모시니 그 수가 아이들까지 합하여 스물하고도 다섯이었다. 그 따가웠던 시선들을 꿋꿋하게도 받아내며 홀연단신 적진으로 발을 들인 예비 제수씨. 아직까지 몇일 안되어 몇마디 못 나눠보았다. 하물며 내 동생 마누라 될 사람을 나라고 어찌 대충 보겠냐만은, 오직 즐거운 마음만으로 이 저울질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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