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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ections

Valentine Lady







(못 받은 생일 꽃은 여기를 클릭하시라.)


일단 생일은 감축하마. 하필이면 가게 대목인 Valentine's Day 에 태어난건 누구 탓을 할 수 없는 너의 팔자인 거다. 거기에 생전 안 겪던 치통까지 참아내며 정신 없이 바빴던 하루를 끝내고 나서야 겨우 생일밥이나 좀 먹어볼까 다녔어도 가는 레스토랑마다 붐비는 커플들로 자리가 없어 결국 동네 중국집에서 한끼 저녁을 때운 일도 누굴 원망치 마라. 생일 축하 와인이라도 한 잔 하려 했건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서 샀던 그 볼품없던 케익 촛불 불기가 무섭게 곤함을 못 이기어 침대에 쓰러져 하루를 맺은 것도, 다 너의 운명인거다.


푸르렀던 보름달도 네 생일임을 이미 잊은 듯, 여느날과 다를 것 없는 그저 평온한 밤을 주었다.

나는 내 애마 Fujita SMK-8900 에 의탁하여 하루의 마지막 15분, 지친 몸과 마음의 짧은 명상에 잠겨 본다. 마사지 체어에서 흘러 나오는 편안한 피아노 연주 사이로 살며시 반쯤 감겼던 눈을 떠보니, 이 시간까지도 지치지 않는 놀라운 스테미너로 녀석은 내 발치에서 아까부터 온통 Thomas Train 기차 놀이에 빠져 있고, 내 옆 침대에 누워있는 너는 편한 자세로 손에 책이 들려 있다. 얼핏 스쳐 보였던 표지가 <삼국지> 같건데 마치 지금 우리 셋 각각의 모습이 그 위촉오가 아닐런지 잠깐 혼자서 웃었었다. 다시 눈을 감으니 언제부터인가 조곤조곤하게 네가 무슨말인가를 나에게 계속 건네고 있었다. 그 일상의 말들이 녀석에 기차 소리에 묻히고, 의자 스피커에서 흐르던 'Kevin Kern' 의 <I Am Always Right Here>에 가려져 잘 들리지가 않았다. 재차 무슨 말이었는지 확인하려 문득 네 쪽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내가 너는 그리 개의치 않은 모습이였다.


그리고는, 우리 셋이 서로에게 배려해 주는 그 거리가 참 아름답다 느껴졌다.

딱 이 만큼의 거리. 네가 내가 필요하면 딱 한 두 발짝만 내딛면 닿을 수 있는 거리, 굳이 큰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녀석이 아빠! 하면 바로 들리는 멀지 않은 거리가, 그 만큼이다. 스물 네시간 서로 끌어만 안고 살면 좋겠건만 그러기에는 이 세상은 너무 바쁘고 혹독하리만큼 인정도 없다. 우리는 서로 안아주고 때로는 놓아주고 하는 일을 평생에 반복해야 하는, 그리고 그 일들로 서로를 위로하거나 혹은 마음에 없는 상처까지도 주고 받을 수 있는 가족의 연(緣)으로 묶였으니, 차라리 서로를 바꾸려 들기보단 그 모습들대로 인정하고 더러 존중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진 한장 못 찍고 네 생일을 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려 네 최근 사진들을 들척이다 곧 마음에 드는 한 장이 보였다. 초점도 맞지 않는 이 사진 속에서 너는 여느 다른 잘 나온 사진들보다도 더 자연스럽고 활짝 웃고 있었다. 아빠가 하는 일이란 모조리 다 따라하려는 녀석의 첫 번째 작품다운 작품이다. 비록 포커스는 빗나갔다 치더라도, 아직 손에 제대로 잡히지도 않는 큰 카메라로 마치 누가 가르쳐 준 듯, 주제 인물을 부각시킬 줄도 알았고 적절하게 들어 맞는 황금 비율의 구도를 구사하였다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울 뿐이다. 무엇보다도 녀석의 사진 속의 네 웃음이 진짜였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웃으라고 주문해도 어색하기만 했던 수 많은 사진들 안에 네 다른 웃음들과 달리 사랑하는 아들의 렌즈 앞에서는 하나의 남김없이 다 버린 그 마음까지 활짝 열어 젖혔구나. 좋은 사진이란게 이렇게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 웃음 뒤의 행복까지도 저절로 느껴져야 하는 것인데, 내가 찍고 싶던 그 사진을 녀석이 먼저 찍은 셈이다.


혹은 내가 평생 너의 그런 사진을 찍을런지 모르겠다.



어느샌가 녀석이 내가 누워있는 배 위로 올라타 포개누워 나의 온 몸으로 전해지는 안마의 울림을 저도 느껴본다. 워~ 워~ 나를 시늉하듯 소리를 내는 것이 흡사 저도 시원하고 좋다는 뜻이란다. 꼭 닮은 모양새로 머리까지 같이 볶은 '파마 부자(父子)'가 의자에 쌍으로 겹쳐 누워 있으니 그 모습이 제법 우스꽝스러웠는 듯 바라보던 네가 뭐라 한마디 하며 또 웃었다. 피아노 선율 사이로 또 다시 잘 들리지 않았는데, 무슨 행복 비스무리한 말을 한 듯 내게는 들린 것도 아마 그냥 착각일꺼다.


그리고 그 웃음이 네 생일날 밤 마지막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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