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나와 내 동생은 열혈 크리스찬이셨던 어머니 손에 이끌리어 오래된 기억 그 이전부터 교회를 다녔던 걸로 아는데, 실은 주일 학교 이쁜 선생님이 나눠주던 간식이며, 예배 후면 온 가족이 매주 갔던 강남 어딘가에 소재한 '부산횟집', 그집 회덮밥 맛이 기가 막혔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믿음을 편의상 그냥 '모태신앙'이라고 부르더라.
그리고 내 아이가 태어난지 갓 한달째 되던 즈음, 예전에 다녔던 교회 목사님께서는 친히 전 교인들 보는 앞에서 녀석에게 극진하게도 안수하시며 정성스런 축복 기도를 해주셨고, 그 후로는 녀석도 엄마 손에 고스란히 이끌리어 주일마다 교회를 나간다. 이제는 성경 구절도 여럿 암송해서 가끔 친지들 모인 곳에서 재주를 부려 어른들을 놀래킨다. 지금의 내 믿음이 바닥을 헤메고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나 역시 녀석은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주신 아주 특별한 선물이라는 것에는 와이프와 이견이 없다.
그러나 최근 나는 '신앙'이라는 아젠다 ('종교'라는 단어를 피하려는 것은 그나마 찌꺼기처럼 남은 내 크리스챤으로서의 마지막 양심의 발로이다.) 자체에 커다란 물음표가 생겼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점점 세속화되는 교회라는 조직 (적어도 교회가 더이상 모임이 아닌 조직이라 쓰는 것에는 이제 껄꺼러움이 없어졌다.) 에 대한 끝없는 회의감이다. 언젠가부터 교회는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곳이라기 보다는, 험난한 바깥 세상에서 상처받은 영혼들이 서로 어울리고 그저 저가 듣고 싶어하는 치료약만 받아 먹고 오는 무슨 병원쯤으로 전락한듯 싶다. 고리타분하게 구약 신약 따분한 설교만 하는 목사들에게는 이제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 성역(聖域)에 갇혀 계셔야 할 분들이, 되려 세상 돌아가는 일을 세상 사람들보다 더 꿰차고 있어야, 신도들은 비로서 레벨이 좀 맞는 목사님이라며 존경하는 시대다. 에러 투성이의 목사님 말씀이라도 그저 하나님의 말씀처럼 맹목적으로 떠받고 믿던 세대는 가고, 신도들보다 똑똑하지 않으면 무시당하는 목사들의 생존 경쟁 시대가 도래했다. 그럼에도 예전엔 한번도 들지 않았던 의구심, 나는 과연 하나님을 따르는 것인가, 목사님을 따르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지금은 대답이 곤란한 상황까지 와버렸다. 그 믿음의 근간이 되어야하는 말씀의 기초가 허약함을 고백하고, 마음을 다잡고자 성경까지 새로 바꿨다.
나라고 뜨겁게 불태우던 시절이 없었을까. 한때는 적당히 타협하시는 우리 부모님의 신앙마저도 감히 못마땅하여 불만을 토로했었다. 참으로 오만했던 그때가 다름아닌 내가 영적으로 가장 충만했던 그때다. 그날들은 지금도 가끔씩 흐릿한 꿈처럼 몽롱하게 아른거린다. 머리 검은 짐승이란 스스로 자기 결정이라는 것을 내리는 날이 결국은 오게 되어있다. 신앙이라는 것은 더욱이 강제로 주입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러나 나는 때아니게 찾아온 이런 뒤늦은 영적 딜레마가, 처음부터 선택의 옵션이 없었던 모태신앙과 전혀 무관하다고는 말 못하겠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마저도 첫번째 아담에게 주셨던 결정적 초이스, 에덴동산 전체가 걸려있던 그 선악과 열매가 자유의지의 상징이든 뭐든, 그 신성한 선택권을 부모들은 아이를 위한다치고 말없이 빼앗고 있는 꼴이다.
때때로 나는 내 아들이 자라서 청년으로 살아갈 미래의 그 시대를 가늠해본다. 몰라도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반기독교적인 이데올로기들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져 있을 것이다. 기독교의 선구자들이 일으킨 미국마저도 그 짧은 역사속에서 그 색깔을 다 잃어 버리고는, 오늘날은 공립학교에서 기도마저 금기하는 나라에까지 와버렸다. 따져보면 철저한 개인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라는 시스템 안에서는 신마저도 감히 인간을 넘어 주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종교의 자유라는 것부터가 애시당초 국가가 공연하게 유신론을 부정하고 있음을 천명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리고 녀석은 내가 겪는 지금의 혼동보다 더 어려운 질문에 봉착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타인들처럼 편하게 아무 생각없이 살아도 나쁘지만은 않을듯 하다. 신은 이미 죽었다라고 외치는 사회에서 'Sunday Christian'은 과연 유신론자인가, 무신론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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