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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ections

Grand Canyon






'고대 그리스에서는 자연을 피시스(physis)라 하였다. 이 말은 피오마이(태어나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하며, 본래 '생성(生成)'을 뜻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 따르면 자연이란 '그 자체 안에 운동의 원리를 가진 것'이다. 이와 같은 그리스의 자연관에서는, 자연은 조금도 인간에게 대립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러한 생명적 자연의 일부로서 그것에 포괄되어 있다. 자연은 인간에게 대하여 이질적·대립적이 아니고 그것과 동질적으로 조화하고 신(神)마저도 거기에서는 자연을 초월하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내재적이다.'


'인간은 오직 자연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 Leonardo Da Vinci


또한 누군가는, 원생(原生)의 대자연이라말로 불가시(不可視)한 신의 존재를 가장 비슷하게나마 그려낸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래서 나는 신에게 만약 얼굴이 있다면, 아마도 인적이 드문 거친 황야를 닮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다. 그리고는 새해 막연하게 떠난 여행길. 하나의 하늘 아래, 과연 한 점 같은 구름은 없었다. 동(東)을 바라보다 명상에 잠기면 어느새 서(西)가 변해버린, 곳곳마다 자연만이 주인이였던 정월의 설경은 몇 번씩이나 나를 놀래켰다.
 

실은 처음부터 무척 내키지 않았던 걸음이었다. 대자연 속에서 가족이 함께 새해의 좋은 기운을 받고자 했던 와이프의 바램을 차마 무시할 수가 없어 내딘 마지못한 동의였을 뿐이였다. 왕복으로 열댓 시간이 넘는 거리를, 답답한 차 안에서 까닭없이 버텨내야 할 4살짜리 아들 녀석이 먼저 걱정이였다. 어렸던 나와 내 동생도 그 비슷한 곤욕을 숱하게 견딘바 있어, 어떤 동병상련의 안타까움이랄까. 책으로 배울 수 없는 세상 견문을 일찍이 넓혀주려 하셨던 부모님의 깊은 속내를 아직은 이해할 수 없었던 나이들이였는데, 그때는 창밖 경치를 구경 안한다고 아버지께 꾸중도 많이 들었었다. 프로이드의 해석을 빌리자면, 그때부터 나는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심하게 기피하는 현상이 무의식적으로 자리잡은 것이 분명하다.


물론, 녀석은 나를 닮지 않아 그 모든게 기우로 끝나버렸지만.










광대하기만 한 미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40번 프리웨이는 왠만해서는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먼 길이려니 마음을 비우니, 오후 5시가 체 되기 전에 벌써 어둑어둑해진 Grand Canyon 초입에 들어서고 있었다. 미국 대표 국립공원이라 하기엔 민망할 수준의 초라한 마을이 그저 전부였다. 곳곳에 수북하게 쌓여 앉은 눈에 흥이 겨운 녀석은 차 안에서 아까부터 눈사람을 만들자고 벼르고 있었다. 장시간 운전에 곤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이미 해까지 져버린 호텔 밖 17℉의 추위를 다시 맞서기가 싫어 잠시 주저했다. 차가운 눈이 시려워 집에 잊고온 손장갑을 사러 둘러보았지만 매장들은 초저녁임에도 이미 굳게 문을 닫은 상태여서 그만 좋은 핑계가 생겨버렸다. 아쉬워하는 녀석의 눈을 피해 조용히 다행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를 일찍이들 끝내시는 산사람들이 이리 고마울 데가.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었다. 밤을 지새 아침까지 주먹만한 함박눈이 내내 쏟아질 줄은.










"There is zero visibility today because of snow." 

Grand Canyon 남쪽 정문에 있던 매표소 직원은 친절하게도 우리에게 입장권 구매를 재고하라 권했었다. 그러나 대체 몇 시간을 달려 당도한 이곳인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 겨울이 가기 전에 눈이라도 실컷 보자는 심정으로 미끌거리는 좁은 산길을 조심스레 운전해 올라갔다. 이곳에도 눈이 내리기는 했던가. 어렸을 적 흐릿한 기억이나 내가 본 그 어떤 사진 속에서도 나는 설경의 Grand Canyon를 본 일이 없었다. 막연하게 협곡이라고만 생각했다가 실상 해발 7000피트에나 오른 사실을 너무 뒤늦게서야 눈치채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나 더 올랐을까.

불현듯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대협곡의 위용. 어느새 눈이 그친 Grand Canyon의 당당한 하늘은 아까 친절했던 그 안내원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 생에 처음보는 절경을 예고없이 선물하였다. 그리고 한동안 모두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실은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는 것이 좀 더 정확한 이유였겠다. 고금의 위대한 시인들이 지금 이곳에 있었다면 내 눈에 비치는 이 가슴 벅차오르는 광경을 어찌 그려냈을까.










Iridescent beams of copper gleam
across this golden chasm,
I stand in reverence,
awed, by this magnificent landscape.


Variegated light, sparked by clouds,
mix up the tints
eyes looking front ~ hope floats
through my consciousness ~ like the emerald ribbon below.


Opposites attracted ~ this gorge of ambition
versus the progress of mankind
complementing each other ~ in everlasting graciousness
interdependencies apparent ~ gazing beyond this chasm.


Ravens fly, deer roam,
free, in the winter sun.
Quietly, a rare occurrence,
in this commercialized world.


Yet, despite the confines of culture
nature conquers ~ this commercialism
refusing to be,
limited by man’s devices.


- <Grand Canyon> by 'Rosemary Winters Trac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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