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ol 이모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책을 엄마와 그대로 따라해 본다. 해바라기 씨를 사다가, 돌아와서는 뒷마당 잔디밭 흙을 조그만 손으로 캐서 담았다. 짓궂게도 잦았던 이번 겨울비 덕에 몇일이나 흙속에 숨어 지내던 지렁이 한마리가 나타나더니, 녀석은 놀라서 들던 삽을 내던지고서는 달아나 버린다. 애궂은 계란 한판을 깨서 화분을 만들고, 예정에 없던 계란말이가 저녘상으로 올라온다. 너무 적게도, 너무 많이도 안되고 딱 적당하게 물을 주고 좋은 햇볕을 맞으면 아기같은 씨가 죽지 않고 잘 자란다는, 책 속에 그 말이 사실일지는 두고 보아야 알 일이다.
왜 하필 오늘이어야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일년, 흐트려 놓기만 한 많은 일들을 차분히 정리하던 오늘, 평소보다도 말을 아끼고 조용히 하루가 마치기를 기다렸다. 자정이 되면 깨져버린 숱한 지난 약속들 다 덮어버리고서는 새해 첫날 차가운 밤 공기를 맡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더욱, 녀석이 보여줄 것이 있다며 내 손을 이끌고 제 방 창문 곁에 놓여있던 정체 모를 계란 껍질들을 가르킬 때, 나는 조금 당황했어야 했다. 오늘 밤이 지나 내일 아침 해가 뜨면, 파란 싹이 조금은 보일거라 들떠있는 녀석에게, 나는 당췌 해줄 말을 한참이나 찾지 못했다. 내가 달력의 숫자에 연연하던 한해의 끝자락 오늘, 녀석은 한가로히 꽃을 심었다. 마치 오늘이 그 모든 날들의 첫 날이듯, 꿈을 바랬다. 내일 새해 아침이면 또 별다를 듯 없이 일어나서 그저 해바라기 씨에 물을 조금 부어줄 일만을 기억할 뿐이다.
나도 그 꽃이 꼭 피기를 바란다. 아니 꼭 피어야겠다.
매일 아침에 잠을 설친
그대보다 먼저 그댈 바라보네
사무치도록 아름답게
그대 몸짓 속에 빛을 적셔주고파
나의 이름을 있게 해준 나의 그대가
운명도 아닌
나의 선택이었으니
- <해바라기> by Lucid 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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