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
결혼 날짜를 받아들고 동생 내외가 다시 미국에 들렸다. 그 다음날인 10월 31일이 다름아닌 우리 부부의 결혼 기념일이라는 것도 우연치고는 놀라웠는데, 때마침 박씨 하나를 물고 옛 흥부네를 찾아들었던 그 까치마냥, 이름 모를 진귀한 새 한마리가 다음날 오후 처마 밑에 걸려, 무슨 일인지 반갑게 울고 있다.
길한 징조다... 혼자서 되뇌였다.
앤드류를 자기 아이처럼 마음 써주는 예비 제수씨가 이미 벌써 가족의 일원이 된 느낌이다. 머리 검은 짐승이란 자기 이뻐해주는 것을 절대 모르지 않는다 했는데, 녀석 역시 태어나 얼굴 몇번 본적 없는 삼촌과 이모를 온 종일 귀찮을 정도로 쫓아 다닌다.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모난 어른들의 시선처럼 사람의 진심을 의심하거나 왜곡하지 않는 혜안이 있다고 믿는다.
어렵다면 어려운 시댁에 이제 얼마 머물면서, 그새 식구들 사이에서 옹기종기 다과를 준비하고 상을 거두는 모습들이 차차 많이 익숙해져버린 사진처럼, 소리없이 가족들 마음의 틈 사이로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
무작정 편하지만은 못한 자질구레한 혼수며 예단 얘기들이 오가는 자리에서, 둘의 모습은 다소 긴장된 듯 마주앉아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모습이 나에게는 적어도 아름답고 편안해 보였다. 불현듯 아직 철없던 스물서넛의 어린 나이에 나와 내 와이프가, 지금 그들과 비슷했던 모습으로 부모님 앞에서 처음 결혼 이야기를 꺼내던 옛 그 날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우리는 참 여렸고 세상 물정 모르던 철부지들이었기에 그저 반지 한쌍 받아들고 평범한 교회 예배당에서 식을 올리던 일조차 가슴 벅차 했었다. 그리 넉넉하지 못했던 처갓댁 사정도 그러했거니와, 그때까지 학생 신분이었던 나는, 소박하게 결혼식을 준비하자던 내 말에 묵묵히 따라주었던 와이프가 오늘날까지도 참 고맙다. 그깟 돈 몇푼 아껴보려고 컴퓨터로 청첩창을 내 손으로 만들어 보라색 종이를 사다가는 수백장씩 프린트해서, 저녁에는 와이프와 작은 리본을 맨 앞장에 같이 붙이던 일도, 지금 생각해보니 얼굴이 많이 붉어지는, 허나 아름다운 추억이다. 마치 한밤의 불꽃놀이처럼, 다음날 아침이면 꿈이었나 싶을 몽롱한 기억이다.
"신랑은 신부를 아내로 맞이하여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한결같이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예배당이 떠나가라 목청껏 예!라고 부르짓던 내 젊은 날, 나는 터져나오던 박수갈채 속에서 평생의 서약을 너무 쉽게도 맹세했던 것이 사실 지금까지 많이 부끄럽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끝까지 사랑해 주는 일이란 그저 노력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맹세컨데 그때는 몰랐었다. 그리 화려하지도, 호화롭지도 못했던 예식이었지만, 우리 커플을 너무 사랑(?)하시어 부흥회를 방불케했던 한 시간 넘은 목사님 주례사 덕에, 죄없이 옆에서 끝까지 서 있어야 했던 들러리들이 나중에 다리가 후덜거렸더라는 뒷 얘기들과 함께, 우리는 정말 많은 이들의 축복을 받으며 그렇게 결혼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그리 세련되지가 못했었다.
"잘 살아라."
결혼하는 커플들에게 누구나 해주는 이 말 한마디 속에 사실 결혼의 모든 비밀이 다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결혼이라는게 삐까뻔쩍 하루만 남에게 잘 보이면 되는 이벤트였음 오죽 좋겠건만은, 실상은 그냥 살아야 할 삶 그 자체니 어쩌겠냐. 삶의 희노애락들이 결혼 안에 모조리 다 담겨 있더라, 단 하나의 빠짐도 없이.
그러나 어차피 다 괜한 소리다. 이제 막 펄펄 날기 시작하는 그들에게, 내 진부한 얘기들은 너무 서두르는 감이 없지 않다.
I take you
To be my wife and my husband
To have and hold
From this day forward
For better , for worse
For richer, for poorer
In sickness and in health
To love and to cherish
As long as we both shall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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