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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인생은 성적순 추석을 즈음하여 오랜만에 친지들이 외갓댁에 모였다. 지금은 별세하신 외할머님께서 다산하신 덕에 증손들까지 모이면 그 수가 제법 되어 외삼촌께서 농으로 하신 그 말씀처럼 조그만 개척교회 하나를 시작할만도 하다. 그간 평안하셨느냐 서로들 따뜻한 안부가 오고가고는 다들 사는 얘기에 화기애애해질 쯤 어김없이 등장하는 자식 자랑 손자 자랑에 얘기 보따리가 또 한가득이다. 미국에 살다한들 한국인들처럼 자식 교육에 목매 사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싶다. 얼마전 오바마가 방한 후 그 교육열을 극찬하고 공공연하게 부러움을 표시해왔던 바람에 그간 대체로 지지해왔던 그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많이 잃은 것도 사실이다. 국제사회화를 염두해 두고 아이들을 유치원부터 영어학원에 보내는 나라가 부럽다니, 그 얼마나 편협하고 근시안적인 .. 더보기
아버지의 마음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천이다.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 되는 나를 대구로 보냈다. 대구중을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 석차는 68/68,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恨)을 자식을 통해 풀자고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 로 고쳐 아버지에게 보여드렸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를 잘 했더냐?"고 물었다. "앞으로 봐야제, 이번에는 어쩌다 1등을 했는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