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가난한 사랑 노래 (1988)
격동의 80년대, 노동 단체 운동권에 가담하여 당시 수배중으로 쫓기던 한 젊은이와 그 연인의 어느 결혼식. 주례를 맡으셨던 신경림 시인은 그 남루한 지하실에서 이들을 축복하는 이 시를 처음 낭송했다고 알려져 있다.
인자한 그 표정속에 내가 오래 잊었었던 사람 냄새가 풋풋하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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