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other's love for her child is like nothing else in the world. It knows no law, no pity. It dares all things and crushes down remorselessly all that stands in its path."
- Agatha Christie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아내는 둘째를 가졌다는 말을 넌지시 건네왔다.
애써 덤덤한 척은 했지만 흔들리던 아내의 목소리에서 또 다시 생명을 잉태한 어머니의 숭고한 떨림이 전해져 왔다. 물끄러미 그 얼굴을 바라보다 진정 아내가 기쁘게 바라던 임신이었음을 확인하고서야 이내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무리 시대가 시대더라도 일단 조금은 노산(老産)이라 먼저 아내의 건강이 염려되기도 했거니와, 아내가 첫째를 가졌을때 나는 참으로 못난 남편이질 않았었나. 그때 아내를 많이도 외롭고 서운하게 했던 씁쓸한 기억 때문에 반가운 소식에도 나는 무작정 기뻐할 노릇만은 아니었다. 별말없이 아내를 꼭 안아주며 그저 지난날의 미안함을 다시금 마음속으로 토로했어야 했다. 벅찬 감정을 억누르듯 아내는 당분간 비밀이라며 가뜩이나 무거운 내 입단속을 유별나게 시키더니만, 그래도 내 지난 과오를 많이 잊어 주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작 본인이 간질거리는 입을 주체 못하고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닌 모양이다. 주변의 축하 인사들을 받는 아내 입가의 미소가 참 행복해 보여 다행이다.
아비가 어미 넓은 속을 어찌 들여다보고, 어미는 아비 깊은 속을 어찌 헤아릴까.
다시금 한 아이의 부모가 된다는 설레임이 몇일 내내 가슴 속 응어리처럼 얹혀 있다. 작년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산타가 미리 놓고간 선물 상자 안에 과연 무엇이 들어 있을까 이제나 저제나 풀어보기를 매일 손가락 세며 기달리던 녀석의 마음이 또한 이랬을까. 이제 아홉달 뒤면 내품에 안겨져 있을 그 놀라운 선물꾸러기를 나는 즐겁게 상상만 해볼 뿐이다. 내가 조용히 흠모하던 어느 목사님 말씀을 따라 나는 뱃속의 아이를 기다리며 누가복음을 들려줄 생각이다. 잠언을 대충 건성으로 읽어주었던 첫째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이번에는 정성을 다해 아빠 목소리를 미리 들려줄 참이다. 어떤 선물이던 감사하게 받아 우리의 부모께서 그리 사셨듯이 나역시 말없이 기쁨으로 모든 것을 참으며 오래 기달려주며 할 것이다.
그래도 이왕이면 아내가 원하는 딸이었으면 좋겠다.
아내의 기도대로 꼭 닮은 이쁜 여자아이를 주신다면, 그 아이는 아마 그 누구보다도 곱고 아름답게, 엄마가 누리지 못했던 그 모든 것들까지 넉넉히 받아 온통 사랑으로 자랄 것을 나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겨울에 태어날 그 아이는 자라서 꽃피는 봄날이면 곧 엄마 손을 잡고 백화점 쇼윈도우의 하얀 리본이 달린 드레스를 보러갈 것이다. 무료한 여름날 엄마의 화장품 진열대에서 빨강 입스틱을 몰래 꺼내 혼자서 연지곤지도 찍어보고 이내 거울속 제 모습이 엄마와 얼마나 흡사한지 지레 놀랄 것이다. 장성하여 가을이면 제 엄마와 단둘이서 한적한 커피숍에 마주 앉아 책 한권과 라떼 한잔으로 나른한 토요일을 보내는 날도 머지않아 올것이다.
만일 내가 화가라면 나는 그런 풍경들을 미리 그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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