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자율 학습.
자율은 무슨.. 행여 하루라도 친구들과 땡땡이라도 치다 잡히는 날에는 담임에게 먼지나도록 맞았던 그 지긋지긋하고 억울했던 extra-curriculum이 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한국에서 연명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뭇 놀랍기만 하다. 얼마전 방한을 마치고 돌아온 Obama가 한국의 교육열을 침이 마르도록 공공연하게 찬양하였는데, 심각한 에러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루종일 수업에 지친 아이들을, 굳이 또 밤 늦게까지 학교에 잡아두어야 하는 이유를 아무도 내게 속시원히 알려준 이가 그때도 지금도 없다. 지극히 비생산적이고 비능률적인 강요된 학습을 어린 학생들이 버티는 데에는, 그나마 함께 견디는 친구들이라도 곁에 있어서가 아닌가 짐작해 본다.
나에게 그런 옛 친구놈 중 하나가 어제 갑작스레 이메일을 보내왔다. 연락이 끊긴지 몇해가 지났는지 기억조차 없는 내 사춘기때 벗. 야자때 내가 성문 종합 영어를 보는둥 마는둥 할때, 옆에서 진지하게 까뮈의 <이방인>을 읽던 녀석, 대학때도 운좋게 함께 미국에서 지내며 밤새 Denny's에서 신이 존재하느냐 마느냐 탁상공론을 펼치며 입아프게 떠들던 그 녀석. 다 큰 놈이 보물1호처럼 들고 다니던 손인형 Elmo, 내 아들놈이 태어나 가장 먼저 좋아하게 될 캐릭터가 될 줄은 그때는 몰랐었다. 한국으로 돌아간지 어언 십여년이 넘은듯 싶은데, 과연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아저씨가 되어 있을지, 결혼은 한걸로 아는데 아이는 몇이나 있는지, 뭐하고 먹고 사는지 궁금한게 너무 많아, 당췌 어디서부터 물어보아야 될지 답장을 쓰기가 어려웠다.
내 속까지 훤히 뚫어보던 몇 안되는 녀석이었는데, 물론 지금도 내곁에는 마음을 통하는 좋은 사람들이 몇 있지만, 그 놈이 없어지고 생긴 빈 공간을 그 이후로 다른 이가 채우지는 못하였다. 내게 쓴소리 해주기를 주저하지 않던 녀석, 돌이켜보니 너무나 고마운 사람이었다. 이제 와서 바라는건 단지 얼굴 한번 보고 싶은 것이 다인데, 그것이 왜 이리 어려울 수 있은지, 사는 일이란게 대체 뭐가 그리 바쁜건지, 나는 그럴듯한 핑계거리가 얼른 생각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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