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flections

잔인했던 4월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 Excerpt from <The Waste Land> by T. S. Eliot (1922)


20세기 문학의 거장, Thomas Stearns Eliot 은, 푸르른 봄이 찾아와도 전쟁후 남겨진 처절한 상실감을 회복하지 못하는 시대의 아픔을 빗대어 'April is the cruelest month'이라 표현했다. 엉뚱하게도 그와는 전혀 다른 의미지만, 4월은 암튼 내게도 잔인한 달이었다.

4월의 대부분을 지독한 독감에 식사도 거의 못하고 온종일 침대에서 시름했다. 오죽했으면 이번 참에 종합 검진을 다 받아 보겠노라 스스로 약속했겠나. (어제 의사 선생님 말로는 독감이 아니라 요즘 유행하는 B형 간염이었을 수도 있었단다. 간염도 혼자 끙끙거리면 저절도 낫는 병임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일도 못하고 하루 내내 집에서 보낸 날이 많았지만, 몸이 성치 못하니 무엇 하나 해낼 기력이 없어, 간만의 휴가 아닌 휴가를 그냥 헛되이 보내었다.

새해 야무지게 다짐하고 등록한 헬스도, 미리 사둔 여러권의 책들도, 목표했던 사진 공부도, 일기같은 블로깅은 커녕 그리 좋아하는 컴퓨터질도 한동안이나 멀리하였다. 아프니까 다 소용없더라. 아프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 아프니까 진짜 나만 손해더라.

아들 녀석이 아빠가 병원갔다 온걸 알고 자꾸 주사 어디 맞았냐고 보여 달란다. 조금 역해서 먹기 싫은 홍삼을 아침 저녁으로 끓여오는 와이프 얼굴봐서 오늘도 눈 딱감고 원샷했다. 아버지께서 인터넷 하시면서 요즘 부쩍이나 내게 건강 관련 기사들을 스크랩해서 이메일 보내시는데, 내가 해드려야 할 일을 오히려 거꾸로 내가 받고 있다.

나는 민폐 끼치는걸 원치 않는다. 내 가족에게라도.






'Reflections' 카테고리의 다른 글

Good Neighbors (NGO)  (0) 2010.05.29
and the Results are in  (0) 2010.05.23
건강 종합 검사  (0) 2010.05.14
야자  (0) 2010.05.07
아버지의 마음  (0) 2010.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