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마치고 집에 들어서니, 저녁에 하필 교회 소모임이 있는 날이다. 맨날 피곤하다는 핑계로 와이프와 아들녀석만 한동안 보내다가, 오늘이 당분간동안 마지막 모임일거라는 말에 거절하기가 미안했다. 거기다가 아빠도 같이 간다고 신나해하는 녀석을 보니, 조금 피곤했던 것이 잠시 잊혀졌다.
오늘 모임을 위해 집으로 초대해준 교회 식구는 젊은 나이에 자수성가해서 제법 큰 사업체를 경영하는 부부인데, 도착하니 내 나이쯤 되어보이는 처음 보는 다른 커플이 인사를 건넨다. 'Good Neighbors'라는 Non-Government Organization (NGO) 소속의 미주 본부장이라고 소개를 받았는데, 나중에서야 'World Mission'과 더불어 한국의 가장 큰 국제 구호 단체임을 알게되었다. 오늘 집주인이 몇달 전부터 후원을 시작했는데, 그들의 기금 모음을 돕기 위해 초대한 듯 했다.
거한 저녁을 포식한 것이 미안해질 정도로, 최근 Haiti 현황과 그들의 구호 활동을 보여주는 동영상을 모두가 가슴아프게 지켜보았다. 간간히 나왔던 질문들 몇 이외에는 다들 내내 말이 없었다. 혹독한 가뭄에 오랜만에 온 반가운 비가, 되려 천지를 발 디딜곳 없이 영화 <십계>에서나 나올듯한 지네 땅으로 둔갑시킨다. 손발을 닦고 그 흙물을 다시 마시는 아이들, 네다섯살만 되면 왕복으로 5시간이 넘는 험한 길을 걸어다니며 식수를 길러오는 그 아이들이, 우리나라 돈으로 130원밖에 안되는 신생아 예방 접종을 받지 못해 다섯 중 하나꼴로 소아마비 장애로 휘어진 다리를 땅바닥에 질질 끌고 다닌다. 모두 한결같이 앙상한 뼈가죽만 남은 갓난 아이들은, 어미가 먹은게 없어 젓이 나오지 않거나, 어미가 병들어 젓을 줄 수 없거나, 어미가 벌써 죽었거나, 셋중에 하나란다. 죽음의 질병 말라리아를 수없이 걸려본 것을 무슨 훈장쯤 되는 마냥 자랑하는 아이들, 그들의 다섯살 이전 평균 사망률, 무려 20%.
"그곳 아이들은 냄새가 나지 않아요."
"오래 동안 먹은게 없으면 사람은 아무 냄새가 안나요."
왜냐고 순진하게 물었던 내가 순간 어지러웠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 아이에게 시선이 갔다. 녀석이 조금 크면 나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비극에 대해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친구들이 배고픈데 왜 맘마가 없냐고 물어보면, 나는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해 줄 수 있을까. 그리고 아빠라는 사람은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다 말해줄까. 문득 국제 구호 활동에 일생을 받치기로 서약한 그 커플 슬하에 자녀가 있는지 궁금했다.
"저 아이들이 다 그냥 우리 아이들이라 생각해요. (웃음) 항상 기도 제목이고 고민이지만, 저희가 이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기 위해서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희야 괜찮지만, 아이에게는 너무나 환경이 열약하고 질병이 많은 곳들을 돌아다니기에, 부모로서 자신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말없이 모두들 숙연해졌다. 적어도 나는, 그들이 불쌍하기는커녕 존경스러웠다. 사회적으로 입지 높으신 어른들, 큰 사업체 돈 많은 양반들, 하물며 명성이 자자한 좋은 목사님들까지 숱하게 보아왔지만, 내게 이토록 도전과 경외감을 불러일으킨 이가 언제 또 있었나 싶었다.
"한달에 $35로 한 아이를 살릴 수 있습니다. 정말 '살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전에도 들어보았던 익숙하고 밋밋했던 문구가 새삼스레 오늘따라 가슴을 요동친다. 나는 도대체 크리스찬으로서, 아니 한 인간으로서, 무엇을 하며 사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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