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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w & Daniel

변명







유치원생의 시작이 험난하기 그지없다.

이제 불과 학교 시작한지 2주째 들어서는데, 몇일 전에는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말썽꾸러기로 소문난 녀석과 한 패가 되어 수업중에 딴짓 한다고 경고를 받아오더니, 어제는 아주 사고를 제대로 치셨다. 누가 제 물건을 맘대로 막 만지고 저를 좀 귀찮게 했다고 친구 하나를 쥐어박은 모양이다. 당황스런 이 소식에 오후에 아이를 데리러 간 와이프가 선생님 앞에서 꽤 진땀을 흘린 모양이다. 녀석이 친구를 쳤다고 해서 난 애들끼리 놀다가 좀 싸웠겠거니 했는데, 그냥 일방적으로 때린 모양이다. 까불다가 맞은 녀석은 다행히도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고 한다.





흠.

내 자식이라서 내가 좀 아는데 (어째 말투가 가카와 비슷하다), 이 녀석 또래에 비해 덩치만 컸지 완전 순둥이다. 개구장이 기질이야 있지만, 너무 여리기만 해서 오히려 딴 애들에게 괴로힘이나 당하지 않을까 남모르게 걱정했던 내가 오히려 뒷통수를 맞은 격이다. 정말 다섯살이란 나이가 아이 인성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시기라고 했던 다른 사람들 말이 거짓이 아니었단 말인가.

퇴근 후 집에 들어서자 녀석은 이미 혼날 것을 미리 알고, 눈치 빠른 강아지 마냥 평소에 내게는 하지도 않던 애교까지 심하게 부리며 귀염둥이 쇼를 하신다. 워낙에 아빠를 무서워하는 녀석이라, 옆에서 와이프도 지레 겁먹고 이미 많이 야단 맞았으니 너무 심하게 나무라지 말란다.





처음부터 별로 혼낼 생각도 없었는데 말이다.

어디서 맞고 들어와도 걱정, 때리고 들어와도 걱정, 어차피 노심초사 아니던가. 애들은 다 치고 박고 싸우면서 크는거지, 별 요란을 다 떤다고 오히려 학교 탓을 더 하면 했다. 사립 학교라 아이들 관리가 아주 엄격하고 제때제때 사소한 일까지도 부모들에게 보고해주는 건 좋은데, 이런 건 좀 우습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야 큰 일이겠지만, 처음으로 아이들끼리 한 번 생긴 일을 가지고 마치 아이에게 폭력성이 다분하다는 등 문제아 취급 당하는 건 좀 아니다 싶다. 나 어렸을 적, 동네에서 맞고 들어왔다고 형 대신 그놈 패주러 갔던 내 동생은, 그 논리대로라면 지금쯤 어디서 조폭이 되어있어야 하지 않을까.

제 자식이라고 무조건 감싸는 철없는 부모라 누가 욕해도 뭐 딱히 할말은 없다.





녀석에게 자초지종을 다 들어보고 형식적으로나마 조금 야단치는 시늉을 냈다. 함부러 사람을 때리면 안된다. 다음부터는 누가 귀찮게 하면 먼저 선생님께 말하라고 분명하게 일렀다. 딱 거기까지만 얘기했어야 했는데, 홧김에 그래도 누가 자꾸 계속해서 까불어대면 한대 더 쥐어박으라고 주문했다.



"You have to know when to stand up for yourself."

실은 이 말을 해주고 싶었던거다. 다섯살짜리에게 이해를 시키려다 보니 말이 좀 와전된 것 뿐이다. 그래서 조금 후회스럽지만 이미 뱉은 말이다. 허나 녀석의 스폰지 같은 기억력을 잠시 간과한 건 내 탓이다. 원래 쓸데없는 소리일수록 아이들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다 기억하는 법이다.





아빠의 변명은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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