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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w & Dan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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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학교에서 발표한다는 녀석의 과제도 결국은 다 부모들의 몫이다.

녀석이 그저 태평하게 여기저기 색칠이나 하는동안, 와이프는 낡은 잡지에서 그림을 오려내고, 잘 나온 사진 몇장을 붙이고, 녀석의 방에서 장난감을 들고 나오느라 분주하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자기 생일 날짜를 정확히 알아듣고는 엉성한 손놀림으로 종이에 적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과연 천재는 악필일까 새삼스레 되뇌여도 보게된다. 분명 30분 전까지만 해도 빨강이였는데, 제일 좋아하는 색이 그새 파랑으로 바뀌었다. 잠깐 머뭇거리는 폼이 또 빨강 파랑마냥 조삼모사가 될까봐 가슴 졸였는데, 장래 희망은 다행히도 아직까지 의사란다. 살짝 요리사는 어떻겠냐고 아빠에게 물어보는 걸 일부러 외면하고, 녀석 마음 변하지 전에 서둘러 Doctor의 철자법을 불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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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들 빈칸마다 아이의 생각으로 채워나가다가 마지막 대목에서 녀석도 엄마도 아빠도 대답이 막혀버렸다. 다섯살 아이가 남을 도울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한참동안이나 진지한 고민을 해보았다. 원래 주관식에 강한 나인데. 학창시절 정답을 모른체로도 A4용지 두장을 앞뒤로 꽉꽉 채웠던 나를 기특히 여기시고 후한 점수를 주셨던 교수님 얼굴까지 떠올랐다. 그리고 그제서야 특별히 남을 도와봤어야 알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달아 버렸다. 아빠라는 사람이 유치원생 숙제에 명쾌한 답이 없어 쩔쩔매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꼴이라니. 아빠는 무엇이든 다 알고있다는 식으로 아이 위에서 군림하던 내가 그리 한심스럽게 느껴질수가 없었다. 곤경에 처해 아무말 못한체 딴곳을 쳐다보고 있던 내 모습에 녀석이 히쭉 웃는다. 어느새 와이프가 재치있게 빈칸에 Smile! 라고 적으라고 하는것을 그냥 바라만 보았다.





난 다음날 아침까지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나는 더 이상 주관식에 강하지 못하다. 나는 내 아이보다 똑똑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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