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한 L.A. Zoo 구경을 일주일 전부터 매일 손꼽아 기다리던 녀석이었기에, 생뚱맞게 아침부터 부슬비 내리는게 오늘은 왠지 아니다 싶었지만, 차마 다음에 가자는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아이와 한 약속을 깨기 싫었던 내 마음을 하늘이 아셨는지, 비는 곧 멈추고 적당히 선선한 흐린 날씨가 걷기에 무척이나 좋았다. 이제 뜨거운 여름이 다가오기 전, 서늘한 봄의 마지막 뒷모습이다. 이런 가족 나들이가 참 오랜만이다.
아이들이 태생적으로 동물들을 좋아하는 것은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감히 어른들도 꺼려하는 파충류들도 거부감 없이
만져 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우리에만 갇혀 있는 사자던 곰이던 다들 나른한 낮잠만 자는데도,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신나는 모양이다. 싱싱한 계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보는것 외엔 다소 지루했던 내가 되려 낯설게 느껴진다.
서너시간 걸어다니다 보니 모두가 조금 지친듯 했다. 동네에서 처음 가 본 근처 월남국수집 맛이 생각외로 깔끔하고 괜찮았다. 요즘 통 입맛이 없던 우리 부부가 모처럼 허겁지겁 그릇을 다 비웠다. 왜 여지껏 여길 몰랐었나 와이프와 마주보고 어리둥절했다. 이렇듯 우리 일상에는 아직 찾지 못한 숨겨진 진주가 이곳저곳 남아있다.
그렇게 짧은 하루가 가고, 녀석은 마치 오늘을 복습이라도 하듯 돌아오자마자 또 다시 Lego Zoo를 만지작거린다.
"아빠, 우리 오늘 코끼리 못봤는데.."
대부분 다 본듯 싶은데, 하나 못 본 것을 기가 막히게 기억한다.
이런 한가로움이, 참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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