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내 할아버지께서 틀니를 빼내시고 자주 즐기셨던 잘 익은 연시 몇개가 어제 저녁 근사한 디저트가 되었는데, 워낙에 먹성 좋은 녀석이라 처음 먹어보는 신기한 과일 맛있어라 한두어개 낼름 먹는것에 큰 걱정 안했건만, 밤새 구토를 하여 한숨도 못잔 모양이다, 아픈 아이를 마음 졸이며 걱정하며 새벽에 이불을 세번씩이나 갈아야했던 와이프 역시 뜬눈으로 밤샘한건 당연지사.
코까지 골며 옆에서 한숨 안 깨고 잘도 잔 내가 오늘 아침 일어나서야 들은 이야기다. 녀석 병원 데려가는 것도 결국 엄마몫이고, 나는 고작 가게나 오픈하러 간다.
암울한 경기 침체로, 도미하셔서 근 20 여년동안 쓸것 안쓰고 부지런히 키우신 부동산 포트폴리오가 하루아침에 반토막나도 하소연 할 어느 한곳 없고, 오로지 자기네 실리나 챙기려는 은행들은 고사하고 정작 부모님 편이 되어줘야할 변호사들까지도 영낙 사기꾼들이나 마찬가지. 설상가상으로 몸도 많이 편찮아지셔서 심신이 지칠대로 지치신 아버지는 어제 또 다른 변호사와 상담을 의뢰하셨다 한다.
은행에서 온 서류를 봐드리겠다고 아침부터 기다리던 팩스가 들어오지 않아 뒤늦게 전화드려보니 이미 떠나신 후였다. 그저 잘 만나고 오셨는지 확인전화나 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남편으로서나 아들로서 나는 어지간히 불편한 존재인가 보다. 다가서기 편치 못해 변변한 일로 나를 신경쓰이게 하는 사람이 이제 주위에 없다. 가족에게조차 이성적이고 까탈스런 논리만을 강요하고, 감정적일 수 밖에 없는 일들에 늘상 사무적인 어투로 대꾸해논 내 생활의 씁쓸한 산물이다. 몸이 편하자고 마음을 얼리는 이내 어리석은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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