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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ections

문방구









여행이 누구에게나 흥겨운 엔돌핀이라도 나눠주는건지, 한국에 도착했던 날부터 녀석은 부시시한 모습으로 아침에 깨어나 늦은 저녁녘 잠들 무렵까지 온종일 싱글벙글거렸다. 제 아빠 엄마가 다들 부산하게 제각기 친구들을 만나러 외출하는 동안, 제접 적잖은 시간들을 녀석이 혼자서 그림을 그리며 놀거나 할머니와 삼촌네가 놀아주며 집에 남아 있곤 했는데, 우리 없이도 큰 불평 없이 매일 잘 지내주어 고맙기도, 또 미안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부터 미리 계획해 두었던 것.


한국에 오면 꼭 녀석을 데리고 아빠가 어릴적 다니던 그런 옛날 문방구를 하나 찾아가는 일이었다. 마침 가까운 시장 뒷골목에 옛 추억을 일으킬만한 곳이 있었다. 어느 여유롭던 아침, 장남감 사주겠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인 녀석이 자다 일어나서 이게 왠 횡재냐 단숨에 주섬주섬 따라나서는 꼴이, 새삼 녀석이 아직 참 어리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했다.


아마 속으로 Toy-R-Us 정도를 기대했던 녀석은 난생 처음 와보는 낯설고 신기한 곳을 나만큼 호기심 있게 살펴보고 있었다. 옛날 내가 기억했던 모습 그대로, 자그만한 문방구 안에는 지금도 두꺼운 검정 안경을 쓰시고 신문을 읽으시는 느즈막한 중년의 사장님 한 분이 앉아 계셨고. 아까부터 꼬맹이 하나가 가게 안에 들어와서 영어로 쉘라쉘라 거리는 모습이 아저씨에게도 우리처럼 서로 좋은 구경거리가 되나 싶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눈치만 보며 힐끔 구경만 하던 녀석은 어느새 자리를 잡고 이것 저것 집어보고 만져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국 품에 한아름 선물을 안겨주니 기분이 좀 나셨는지, 간만에 각 잡고 내 렌즈를 향해 귀염둥이 사진 포즈까지.



















"아빠, can we go to moon-bang-goo again?"

다음날 아침, 녀석이 나를 흔들어 보챈다. 오늘은 제 엄마까지 같이 끌고 갈 심산이다. 벌써 먼 발치에서 어제 그 문방구를 발견하고 뛰어가서는, 할아버지뻘 되는 그 문방구 아저씨께 넉살좋게 "헬로!" 한번 방긋하게 날려주면서.


어쨌든 아빠의 옛 추억거리 한가지는 이제 녀석에게 물려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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