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누구에게나 흥겨운 엔돌핀이라도 나눠주는건지, 한국에 도착했던 날부터 녀석은 부시시한 모습으로 아침에 깨어나 늦은 저녁녘 잠들 무렵까지 온종일 싱글벙글거렸다. 제 아빠 엄마가 다들 부산하게 제각기 친구들을 만나러
외출하는 동안, 제접 적잖은 시간들을 녀석이 혼자서 그림을 그리며 놀거나 할머니와 삼촌네가 놀아주며 집에 남아 있곤 했는데, 우리
없이도 큰 불평 없이 매일 잘 지내주어 고맙기도, 또 미안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부터 미리 계획해 두었던 것.
한국에 오면 꼭 녀석을 데리고 아빠가 어릴적 다니던 그런 옛날 문방구를 하나 찾아가는
일이었다. 마침 가까운 시장 뒷골목에 옛 추억을 일으킬만한 곳이 있었다. 어느 여유롭던 아침, 장남감 사주겠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인 녀석이 자다 일어나서 이게 왠 횡재냐 단숨에 주섬주섬 따라나서는 꼴이, 새삼 녀석이 아직 참 어리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했다.
결국 품에 한아름 선물을 안겨주니 기분이 좀 나셨는지, 간만에 각 잡고 내 렌즈를 향해 귀염둥이 사진 포즈까지.
"아빠, can we go to moon-bang-goo again?"
다음날 아침, 녀석이 나를 흔들어 보챈다. 오늘은 제 엄마까지 같이 끌고 갈 심산이다. 벌써 먼 발치에서 어제 그 문방구를 발견하고 뛰어가서는, 할아버지뻘 되는 그 문방구 아저씨께 넉살좋게 "헬로!" 한번 방긋하게 날려주면서.
어쨌든 아빠의 옛 추억거리 한가지는 이제 녀석에게 물려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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