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에서 아이들 사이에 요놈이 아주 난리도 아니다. 집집마다 이거 하나 없는 아이가 없고, 장난감이 아주 동이 난다라는 표현이 사실임을 매장에서 처음 목격하기도 했다. 우리 어렸을 적으로 치면 딱 팽이인데 요것을 현대식으로 아주 편리하게 변형시킨 상품이라 보면 된다. 솔직히 이 나이에도 어린 날의 향수에 젖어 한두번 하다보면 어른들도 꽤 재미있다는 부끄러운 고백도 해야겠다. 우리 어렸을 적 종류별로 팽이 모으던 것과도 별반 다를 것 없이 요것들도 아주 시리즈로 다 모을려다 보면 그것 또한 만만치가 않다.
그간 주위에서 선물 받아 모은 (그중에는 미국에서는 구할 수 없어 ebay에서 프리미엄까지 얹혀서 거래되는 한국으로부터 공수된 모델들도 우창 커플 덕에 상당히 많이 있다.) 팽이 컬렉션을 바닥에 쭉 펼쳐놓고 원, 투, 쓰리, 포... 흐뭇하게 세어보는 것을 낙으로 여기던 녀석이 지난 주일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열댓개 전부를 책가방에 챙기고서는 교회를 가더란다. 아마 친구들 앞에서 막 자랑할라고 그랬던 모양이다. 그런데 와이프가 보니까 녀석이 교회에서 이놈 저놈 제 친구들한테 하나씩 막 나줘주고 있더란다.
이번이 비단 처음이 아니다. 행여 누가 집에라도 놀러와서 장난감 하나 집어들고 가져갈라고 하면, 아주 쿨하게 그냥 퍼주는 녀석이다. 집에 장난감이 워낙에 많아서 아쉬운 걸 모르고 철없이 그려려니 해 왔지만 오늘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다행히 엄마가 나서서 몇개 나눠주고 끝났다지만, 녀석에게 뭐라 한마디 했다.
"너 임마, 아빠 엄마 삼촌 이모가 앤드류 이뻐서 사준걸 친구들한테 그냥 다 주면 어떻해? 그건 네가 받은 선물들인데."
"I'm sorry 아빠."
말 한마디로 천냥빚 갚는 개념을 이미 4살에 터득한 녀석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엠쏘리' 신공을 펼치고 방긋 웃어버리는데, 내 입에서는 여느때처럼 반사적으로 절로 괜찮다는 대답을 해버렸다. 그리고 천천히 녀석의 사정을 들어보니 그래도 나름 퍼주는데 지론이 있는 듯 했다. 친구 누구누구는 팽이가 많아서 안줘도 되고 누구누구는 자기보다 조금밖에 없어서 혹은 아예 없어서 주었다는 이야기다. 와이프 말로는 그중에는 형편이 넉넉치 못한 어느 목사님의 아들, 동갑내기 친구도 있었던 모양이다.
녀석의 얘기를 듣고 한동안 아무말 못한채 그냥 TV만 보는척 했다.
내가 필요한 것 빼고, 내가 아끼는 것 빼고, 필요없지만 혹 나중에 쓸까봐 빼고, 이것 저것 다 빼고 남에게 줄 것 하나 남지 않는 어른들의 세계보다 녀석은 훨씬 풍요로운 세상을 살고 있었다. 책을 읽어주면서 이웃에게 사랑과 나눔을 가르치던 부모는 정작 책장을 덮고 현실에 돌아오면 고작 팽이 몇개 나눠준 아이를 다그치고 있는 꼴이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은 아이가 이리 어려서부터 벌써 기성세대로부터 세뇌 당하고 있는 것이다.
"앤드류, I'm sorry."
"뭐가 아빠?"
"친구들한테 장난감 줘도 돼."
"...?"
혼란스런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녀석의 눈을 피하며 차마 더 다른 얘기는 하지 못했다. 계속해서 아이에게 미안하다고만 했다. 이중적이고 가식적인 못난 아빠가 되어서 미안하다고 속으로만 말해 주었다. 언행이 일치하지 못하는 아빠를 제발 닮지 말라고 작은 소리로 주문을 걸었다.
나는 아이에게 과연 올바른 교육을 하고 있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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