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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ections

Digitally Foolish





Blogging 이후, 사진들을 찾아보며 비로서 내 컴퓨터안의 파일들이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정리가 안되었는지 알게됐다. 여기다 갖다 대면, 내 옷장꼴은 양반이다.

머피의 법칙인지 머시긴지, 간만에 파일 정리 한번 해보겠다는 찰나에, 아뿔사 하드가 나가버린다.. 백업도 안됐는데.. 다른건 몰라도 사진들만은 잃어서는 안되는데. 부랴부랴 500GB SATA 하나 사와, 다른곳에 사진들이 혹시 백업됐나 와이프컴까지 죄다 뒤져본다. 이런 와중에도 우스운 생각이 드는것이, 어차피 내가 기억못하는 사진들은 찾아봐도 있는지 없는지 알턱이 없을텐데 뭐하는 짓인가 이게.

그리고는 문득,

우리 어머니가 예전부터, 아버지와 다투시면서까지, 여기저기 가면 사진 못 찍어 안달을 내시고, 역광에 망친 사진들까지 일일히 현상하셔서 하나둘 사진첩 모아두신게 족히 100개는 될텐데, 그때는 그게 하릴없다 생각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어머니가 제일 현명하셨던거다. 가장 완벽한 백업은 오프라인 아날로그가 아니던가. 그렇고보니, 나는 사진첩이 하나라도 있나. 친하다는 친구들 사진한장 없는 놈들이 수두룩하구나.

옛날 카메라 필름 생각이 나니까, 갑자기 와이프 졸업식날이 떠올라 오랜만에 눈물나게 웃었다. 그때는 결혼전이었는데, 나름 남자친구가 폼나게 하루 서비스한답시고 졸업식 내내 이각도 저각도, 이친구들 저친구들 모조리 불러 한참을 찍어댓는데, 뭔가 이상했던 와이프가 대체 필름 몇통을 찍냐고 묻길래, 불현듯 그제서야 필름없은 카메라에 셔터질만 하고 있던 내가 확인됐다. 그날 와이프가 정말 엉엉 울었는데, 모르는 이들은 아마 학교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한 학생으로 와이프를 기억하고 있을거다. 텅 빈 강당과 불꺼진 강대상을 배경으로 눈물로 화장이 엉망된 와이프 졸업사진이 집안 어디 있을게다. 설마 와이프가 몰래 불태워버린건 아니겠지.. 아날로그만 가능한 추억만들기, 지금은 그일로 다같이 웃을 수 있다.

세월은 흘러, 어느덧 디카에 길들어지신 어머니도 예전처럼 사진 현상을 자주 안하시게 되었다. 가끔 본인 컴퓨터에 저장해달라 부탁만 하시고, 사진첩 대신 모니터 앞에서 여유있게 디지털로 즐기신다. 과연 문명은 편리한데, 뭔가 사람의 맛은 덜해졌다. 디카에 현혹된 이 시대는 이제 사진은 없고, 사진 파일만 있다.

이거, 생각해보니 코메디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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