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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ections

Holy Matrimony




내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고, 내 주위나 후배들 결혼들 할때면 빠지지 않고 늘상 오가는 말이 있다. 결혼 준비 와중 사소한 것들에 신경이 퍼렇게 날처럼 서있다보니 종종 커플들 사이에 다툼이 생기곤 하는데, 와이프 될 처자들이 너나없이 내뱉는 레파토리중 하나, "일생에 한번뿐인 결혼인데, 결혼식은 최대한 내가 원하는데로 해줘."

그러나 이말에는 어폐가 다분하다. 두 커플중 한 쌍이 이혼하고, 전과(?) 한번쯤은 애교로 봐주다 못해, 돌싱에 되려 프리미엄까지 붙는 요즘 세상에 '일생에 한번'이라니. 쓴웃음 지어지는 '4주후에 뵙겠습니다'가 괜히 유행어가 된것이 아니다. 그나마 통계상으로는 정상적으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커플이 더 많다는데, 내 주위 커플들만 보더라도 체감상으로는 다들 늘상 이혼전선 주의보가 50%를 웃돈다. 앵간한 노력없이 저절로 굴러가는 결혼은... 거의 없다, 아니 아예 없다. (이걸 결혼차 10년이 넘어 깨달았는데, 혹자는 그것도 내가 빨리 깨달은 축에 낀다 격려해준다, 자랑이다.)

암튼, 이야기가 옆길로 새어나가기전에.

어찌어찌해서 '니가 원하는데로 해봐' 토닥거려주면, 결국 와이프 되실 분들은 교회는 싫어, 호텔은 평범, 야외로 할까, 컨셉이 중요, 칼라가 필요, 핑크는 싼티, 파스텔은 어때? 꽃장식은 멀로? 등등 실로 생사가 걸린 엄청 중요한 문제들을 남편들과 상의하려 들고, 지극히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보통 이상의 인내력을 소유한 건장한 남성들이 보편적으로 답하는 "나는 괜찮으니까 니가 원하는데로 해" 반 귀찮이즘 코멘트에 '나 혼자 결혼하나?', '상관을 안하는거냐, 사랑을 안하는거냐', '이럴꺼면 왜하냐, 걍 이쯤에서 관두자', 3연타 크리로 남편될 사람을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보낸다. 상처를 보듬고 뒤돌아선 남자들의 혼잣말, "언제는 지가 원하는데로 하자더니, 맘대로 하라 해도 뭐라고 하네." 그나마 그것도 혹시 들릴까봐 나즈막히 중얼거리다 만다.

생각해 보면, 결혼처럼 아이러니한 예식도 없다. 분명 누구보다 당사자들에게 의미있는 의식이자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맺음을 상징하는 것에 의의가 있는데, 꼭 이게 가족과 타인들 (일명 '남들') 앞에서 행해지는 '보여주는 예식'를 통해서만 공식화된다는 점이다. 암튼 그렇게들 머리 싸메고 나름 이쁜 결혼식 뒷배경에 사진 한방 찍고 나면, 세월은 속절없이 지나만 간다. 나역시 평범한 결혼식부터 호화찬란한 골프장 야외결혼식까지 두루두루 다녀보았지만, 몇달 지나면 누구 결혼식이 누구꺼였는지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후에 당사자들이 참회하는 심정으로 주구장창 고백한다. '평생에 헛돈 결혼식에 다 발랐다', '차라리 집을 살껄' 등등 눈물만 흘리지 못할 뿐 고해성사가 따로없다. 정작 중요한 '의'를 망각하고,'식'에만 정신이 나갔던 지상 모든 커플들의 양심 선언이다. 알멩이가 없으면 제아무리 치장한들, 곱씹어 남는게 없다.

윗 동영상은 youtube에서만 전세계 3천만명 이상이 지켜본 한 커플의 소위 말하는 진짜 소박한 결혼식의 일부이다. 얼핏 보이기에도 그리 크지 않는 동네 교회에서 꽃장식은 커녕 그 흔한 웨딩 아치 하나없다. 어디서 빌려입은듯한, 아예 다 맞춰입지도 못한 촌스런 옷차림의 들러리들이 입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무엇때문에 이 영상이 화제가 되었는지 가늠할 길 없었다.

그 다음부터는 그냥 지켜보면 된다. 절로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가 어느새 환한 웃음이 된다. 즐거운 그들의 모습에 끝내 나는 목이 조금 잠기고 말았다. 눈물이 핑도는 감동이란 이럴때 쓰는말이 아니던가. 다소곳하고 경직된 이쁜척하는 신부라던가, 어깨에 잔뜩 힘 들어간 신랑은 없고, 체면은 뒷치레 생애 최고의 날 기쁨을 차마 가누지 못하는 한 커플만이 있다. 진정 축복의 한쌍 아닌가, 그들을 위해 몸을 던져 축하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저리 많다니. 자리만 채운 하객 1000명의 결혼식은 여기에 갖다 비할 바가 아니다.

성스러움과 엄숙함이 그냥 세뇌적으로 동의어처럼 쓰이는 껍데기뿐인 우리 시대에, 나역시 이미 그렇게 길들러져 있던 모양이다. 혹 어른들이 경망스럽다 혀를 찰만한 이 난장판 결혼식이, 왜 내눈에는 그간 보았던 그 어떤 결혼식보다 진실하게 다가오는지 쉽사리 알수 없다.

차마 이보다 더 거룩할 수 있을까? 나는 낯선 이들의 결혼식을 오랫동안이나 기억할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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