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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w & Daniel

일곱살 앤드류


















여러 해 전부터 종종 찾아왔던 놀이공원이었지만, 지난 달 처음으로 둘째까지 데리고 왔던 Legoland 정문 매표소 옆에는 언제 지었는지 모를, 그 전에 보지 못했던 형형색색의 건물 하나가 눈에 띄게 세워져 있었고, 오픈한지 불과 얼마 안된 새로운 레고 호텔이라는 말에 앤드류는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었다. 다음에 꼭 가보고 싶다던 그 어린아이 푸념까지도 와이프는 흘려 듣지 않고 새겨 두었다가, 녀석이 마침 일곱살이 되는 생일날에 맞춰 미리 방을 예약해 두었었다.


6월의 하늘은 아이처럼 해맑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방학 기간이라 내심 염려했던 바와 달리 호텔은 평일이어서인지 아침부터 제법 한산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테마별로 나누어 온갖 장식으로 화사하게 치장된 방 안이며, 곳곳마다 레고로 꾸며진 호텔 로비부터 엘리베이터 구석구석까지, 여느 일곱살 난 아이가 그러하듯 분주하게 이곳 저곳을 살피던 녀석은 살짝 들떠 보였고, 아빠는 그 모습에 어느새 운전의 곤함도 잊고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아직까지 녀석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토실토실 건강하게 잘 자라준 녀석은, 모두 감사할 따름이다











올해는 무던히도 여름이 빨리 찾아와 녀석만큼이나 나도 좀 여유로이 풀장을 즐기리라 기대했건만, 후끈 햇살이 뜨거웠던건 비단 우리 동네 이야기였을 뿐, 초여름 San Diego의 차가운 바닷바람은 여전히 꽤 쌀쌀하고 매서워서 녀석이 장시간 수영하기에는 다소 추웠던 게 아쉬웠다. 혹시나 몰라 가져온 두툼한 스웨터를 걸치게 만들고는 저녁을 먹자는 핑계로 따분하기 그지없을 근처 쇼핑몰을 거닐게 했다. 


새벽처럼 눈이 떠져 부푼 마음으로 도착한 이곳인데 벌써 해 질 무렵이라니. 종일 곧 잘 웃던 녀석에게서 잠시 잠깐 그늘진 표정들이 스쳐 지나간다. 최고로 기분 좋아야 할 생일인데 자기 원만큼 다 놀지 못한 꿀꿀한, 그 설명할 수 없는 억울한 투정이 어느새 얼굴 가득 번져 있었다. 조목조목 자기 감정조차 아직 따지지도 터트리지도 못하는 혼란스런 내 아이의 뒷모습에서 석양처럼 쓸쓸한 실루엣이 늘어져가고 있었다. 그건 굳이 말 해주지 않아도 부모라면, 부모라야 알 수 있는, 어린 내 옛 일곱살의 자화상처럼 조용히 메여와야 했다.














해가 지고 밤하늘은 별도 없이 아늑했다. 호텔안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여러 행사들이 한참 진행중이었다. 미국에서도 이젠 익숙하게 들리는 <강남스타일> 반주에 한 무리의 아이들이 디스코를 추고 있었다. 춤추는 아이들 사이로 등을 떠밀다시피 해도 녀석은 전혀 흥이 나지 않는지 덩치만 커버린 여전한 쑥맥임을 재차 확인시켜 줬다. 야외에서는 갖가지 모닥불이 지펴지고, 야간 수영장 한켠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는 아이들을 위한 영화가 시작되는 모양이다. 낮에도 제법 쌀쌀했던 수영장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어느덧 밤샘 추위를 던져버린 아이들이 삼삼오오 풀 안으로 몰려들 때 쯤, 불쑥 녀석이 오후에 실컷 못한 물놀이가 아쉬운듯 자기도 수영하고 싶다고 조심스레 물어온다. 보나마나 감기나 걸릴까봐 안된다는 뻔한 아빠의 대답을 반쯤은 미리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나는 설명할 수 없는 미안함을 떨쳐내듯 군소리 없이 마음껏 하라 했다. 그깟 감기 좀 걸리면 또 어떠한가. 부모의 시시콜콜한 걱정이나 배려가 아이에게 얼마나 설득력 없고 재미없는 변명인지 왜 늘 잊고 살까. 


신비한 오아시스 속으로 빠져들 듯 환하게 빛나는 풀 속으로 조그만한 제 몸이 지체없이 차가운 물에 잠긴다. 처음보는 영화일텐데 어느새 다른 아이들과 함께 몰입하여 가끔 탄성을 지르거나, 조금만 따분한 장면들로 영화가 지루해지면 금새 물안경을 고쳐쓰고 텅 빈 물속을 기웃기웃 들여다 보기도 한다. 알수 없는 동심의 상어 한마리가 물속을 헤엄이라도 치고 다니는지 어차피 나는 볼 수 없는 노릇이다. 밤 하늘 벗 삼아 물놀이 삼매경. 영화가 끝나서도 한참이나 나올 생각이 없는듯, 이미 녀석에게 시간 같은 건 한낱 숫자가 되어버린 모양이다. 그런 녀석의 눈에는 다시금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그 별은 얼마나 행복할까, 나즈막하게 무슨 속삭임이라도 주고 받는 걸까. 내가 잃어버린 그 모든 것을 녀석은 바로 내 발치에서 한없이 만끽하고 있다. 'Shock Top'이라고 처음 맛 본 오렌지향 짙은 벨기에산 생맥주 몇 잔 덕에, 나도 그저 몽롱한 꿈이라도 꾸었으면. 


그리고, Happy Birthday, Andrew.















앤드류는 일곱살. 밉기는 커녕, 무려 사랑스런 일곱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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