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중고등학교 시절, 때때로 시내버스 오가는 길에 처음 퀘퀘한 최루탄 냄새를 맛보았고, 그맘때쯤 9시 뉴스에 연일 화염병 던져대던 빨간 복면 대학생들 모습에 서서히 길들여지며 사춘기를 지냈으나, 도미한지 어언 20년 가까이 되다보니 한국 정치에 관심 끊은지 좀 되었다. 사실은 좀 의도적인 부분도 없지 않다. 보기 싫어도, 듣기 싫어도, 간간히 접하게 되는 한국 정치판을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안보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울 수 있겠다도 싶었다. 그래서 나는 좌익이니 극우니 하는 단어들에 이제 덜 민감하게 반응하고, 정치 찌라시 기사들을 무슨 연예특종 읽듯 그저 담담하게 받아드리게 되었다.
만인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란 애시당초 없는것. 그런데 유시민 전장관같이 유난히 개개인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정치인도 많지 않다. 화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포스트 노무현이라 불리는 것 또한 칭찬으로 혹은 비아냥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동전의 양면같은 극단적인 그러나 동시에 모호한 별칭이다. 그런 엇갈린 대중의 평가들을 뒤로 하고 나름대로 내가 유시민이란 사람에게 주관적으로 갖고 있는 몇가지 인상은, 자기 색깔이 뚜렷하다는 것, 현란한 말솜씨만큼 많이 공부한 티가 나도 결코 현학적이지 않다는 것, 논란이 될만한 이슈는 아는 만큼만 얘기하되 본인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어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 정도로 압축된다.
정치적 관점을 떠나, 그의 그런 점들 때문에 나는 그의 인터뷰나 동영상 강의를 일부러 찾아 들어본다. '출세'라는 논제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실상 정치와 무관한 질문에 어김없이 그의 정치적 칼라는 묻어난다. 그러나 한겹만 벗기고 그 안을 들여다 보면, 그의 답변에는 대체로 공감할 수 밖에 없는, 그러나 아무나 꼬집어 내기 힘든, 묵은 진리 비슷한 것이 있다. 나를 위시한 시대의 젊은이들이 색맹인냥 잊고 사는 출세지향주의의 근본적 오류가 무엇인지, 비범한 깨달음을 참 평범한 단어들로 풀어낸다. 이 이야기는 훗날 내 아이에게 들려줘야 할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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