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구질구질 내리는 비까지, 간만에 찾은 LAX 는 늦은 시간까지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곧 있으면 13시간이라는 지독하게 지루한 여행을 하게될 제 운명을 알 턱이 없는 녀석은, 그저 저에게 너무나 웅장하게 서있는 국제선 터미널의 위용에 잔뜩 들떠 보였다. 인천항 밤 비행기라 지금쯤 곯아 떨어져야 할 시간임에도, 공항 오던 길 아까 숨이 멎듯 불현듯 나타나 녀석을 놀라게 한 LAX 착륙장, 그래서 차 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내다보았던 위풍당당한 747 들이 즐비했던 그 광경을, 녀석은 차마 머리에서 떠나 보내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 거대한 여객기들 중 하나를 곧 타게 될꺼라는 말에 어쩌면 지금 아이로 감당하기 힘들만큼의 흥분에 빠져 있었을 수도 있다.
분주하게 탑승 수속까지 마친 그제서야, 예상치 못했던 무슨 쓰린 것이 가슴을 후비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뭉클뭉클 했던 것이 이제야 생각해 보니, 녀석을 이리 멀리 보내보는 일이 처음이라 그런 모양이다. 엄마와 할머니도 같이 기껏 보름 다녀오는데 쓸데없이 센치해지기는 속으로 탓하며, 이렇게 공항이란 곳은 참으로 얄궃은 구석이 있구나 생각했다. 그리고는 예전에 들렀던 말, 공항은 이별의 연습장 같은 곳이라고, 그래서 같은 악수라도 평소보다 조금 더 꽉 잡아주고, 같은 포옹이라도 평소보다 조금 더 길게, 같은 인사라도 평소보다는 조금 더 친절하게, 모두들 연습 중이라고.
"앤드류, 한국 가서 엄마랑 할머니 말씀 잘 들어."
"아빠, I'm gonna miss you."
오늘만큼은 모처럼 동문서답의 좋은 예라 하자. 마지막으로 잘 다녀오라고 녀석과 포옹하는데 내 목이 아플 정도로 세게도 녀석이 잡아 당긴다. 그래서, 너도 벌써부터 연습 중이구나. 네가 자라면 자랄수록, 잠시 혹은 더 오랫동안 헤어져야 할 시간들이 점점 많아질텐데, 어쩌면 나보다도 네가 먼저 더 능숙해지겠구나. 품을 떠난다는 말, 지은이가 누군지 참, 생각해 볼수록 너무나 아련하고, 슬프도록 아름다운 말이구나.
비도 계속오고 해서, 혼자 집에 돌아오는 길이 빗소리처럼 찹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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