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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ections

우산 나는 녀석이 태어나던 날,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소원했었다. 이듬해 들어서서는 "착하고 바르게만 커다오" 라며 주문을 어느새 바꾸었다. 올해, 이제 막 들어간 지 한달 채 안되는 동네 어린이 축구팀에서 녀석을 내 마음대로 탈퇴시켜 버렸다. 나이도 더 많은 큰 애들 사이에서 같이 뛰기에는 아직 조금 힘겨운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적응이 필요하고 아직 이르니 좀 더 계속 시켜보자는 와이프의 만류에, "난 내 아들이 딴 애들 들러리 서는 꼴은 못 본다." 무심코 내뱉은 말에 나 자신도 조금 놀랐었다. 내 안 깊숙히 내재된 속물 근성이 여실히 드러난 꼴이라니. 다시 주워담지 못할 말에 스스로 많이 부끄러웠던 일이었다. 나는 진정 내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가. 추운 겨.. 더보기
Valentine Lady (못 받은 생일 꽃은 여기를 클릭하시라.) 일단 생일은 감축하마. 하필이면 가게 대목인 Valentine's Day 에 태어난건 누구 탓을 할 수 없는 너의 팔자인 거다. 거기에 생전 안 겪던 치통까지 참아내며 정신 없이 바빴던 하루를 끝내고 나서야 겨우 생일밥이나 좀 먹어볼까 다녔어도 가는 레스토랑마다 붐비는 커플들로 자리가 없어 결국 동네 중국집에서 한끼 저녁을 때운 일도 누굴 원망치 마라. 생일 축하 와인이라도 한 잔 하려 했건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서 샀던 그 볼품없던 케익 촛불 불기가 무섭게 곤함을 못 이기어 침대에 쓰러져 하루를 맺은 것도, 다 너의 운명인거다. 푸르렀던 보름달도 네 생일임을 이미 잊은 듯, 여느날과 다를 것 없는 그저 평온한 밤을 주었다. 나는 내 애마 Fujita S.. 더보기
마음빚 가족이 하나 더 가까이 있다는 것이 부모님에게는 이리 큰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진작에 몰랐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이 무던히 이어지던 지난 밤, 도데체 몇 병의 와인들을 새로 꺼내 열었는지도 아무도 기억에 없다. 동생 내외가 떠나기 전 마지막 자리라는 생각에, 모두들 못내 남은 아쉬움들을 못이기는 듯 선뜻 자리를 먼저 뜨는 사람이 없었다. 늘상 헤어짐이란 것이 그렇듯,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가슴앓이를 매번 주고, 그 쓰리는 뒷맛은 목젖을 타 흘러내리는 와인처럼 매번 생생하고 진하기만 하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끝내, 고맙다는 말을 해주었다. 식구들에게 겨우 눈치를 주고 단 둘만의 몇 분을 갖고서야, 그 아이에게 한번은 해 주었어야 했던 말, 어려웠던 몇 마디를 힘겨이 꺼냈다. 동생의 지난 날.. 더보기
저울질 동생 녀석이 오랜만에 미국에 휴가차 나왔다. 그러나 결혼 상대로 생각하는 처자를, 그것도 구정에 맞춰 데리고 온다는 계획을 막판 오기 몇일 전에서야 알린 것은 조금 뜬금없었다. 일전에 아버지께서는 한국을 왕래하시면서 한두 차례 면식이 있었던 듯 한데 가족들 앞에서는 전혀 언급을 피하시고, 그나마 간접적인 정보 루트인 우리 어머니 지방 통신에 따르자면, 당신께서 크게 마음에 차지 않으신다는 혹평에 가까운 쪽이었다. (그에 대한 이유는 아버지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취지에서 생략한다. 실은 그것들은 지면으로 차마 발힐 수 없는, 나로서 쉬이 납득하지 못하는 아버지만의 세계안에 난해한 것들이며, 설령 내 생각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하여 예전처럼 무작정 그 연륜의 눈을 무시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뭐 며느리감으.. 더보기
아담의 선택 어려서 나와 내 동생은 열혈 크리스찬이셨던 어머니 손에 이끌리어 오래된 기억 그 이전부터 교회를 다녔던 걸로 아는데, 실은 주일 학교 이쁜 선생님이 나눠주던 간식이며, 예배 후면 온 가족이 매주 갔던 강남 어딘가에 소재한 '부산횟집', 그집 회덮밥 맛이 기가 막혔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믿음을 편의상 그냥 '모태신앙'이라고 부르더라. 그리고 내 아이가 태어난지 갓 한달째 되던 즈음, 예전에 다녔던 교회 목사님께서는 친히 전 교인들 보는 앞에서 녀석에게 극진하게도 안수하시며 정성스런 축복 기도를 해주셨고, 그 후로는 녀석도 엄마 손에 고스란히 이끌리어 주일마다 교회를 나간다. 이제는 성경 구절도 여럿 암송해서 가끔 친지들 모인 곳에서 재주를 부려 어른들을 놀래킨다. 지금의 내 믿음이 바닥을 헤메고 있.. 더보기
고목(古木) 대학 시절부터 20대의 전부를 타지에서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던 나의 곁에는 큰 어른같은 분이 계셨는데, 그 분 내외는 오랫동안 나와 와이프를 참으로 많이 아껴주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브레이크가 고장난 롤러코스터와 다름없던 내 젊은 날의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보신, 아주 가까운 지인들도 차마 보지 못했던 나의 나약한 치부까지도 전부 알아버리신, 세상에 몇 안되는 분이다. 나에게서 나름 큰 비젼을 바라보시고는 물심양면으로 힘껏 도와주셨는데, 나는 끝내 그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했었다. 내가 너무 잘난 줄 알아서, 아직 철없이 너무 어린 줄도 모르고, 나는 만만치 않은 세상에서 미끌어져도 다치지 않고 잘 넘어지는 방법을 그때까지 터득하지 못했었다. 결국 크고 작은 실수들이 겹겹히 쌓이며 난 그만 한없이 긴 나락으.. 더보기
Grand Canyon '고대 그리스에서는 자연을 피시스(physis)라 하였다. 이 말은 피오마이(태어나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하며, 본래 '생성(生成)'을 뜻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 따르면 자연이란 '그 자체 안에 운동의 원리를 가진 것'이다. 이와 같은 그리스의 자연관에서는, 자연은 조금도 인간에게 대립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러한 생명적 자연의 일부로서 그것에 포괄되어 있다. 자연은 인간에게 대하여 이질적·대립적이 아니고 그것과 동질적으로 조화하고 신(神)마저도 거기에서는 자연을 초월하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내재적이다.' '인간은 오직 자연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 Leonardo Da Vinci 또한 누군가는, 원생(原生)의 대자연이라말로 불가시(不可視)한 신의 존재를 가장 비슷하게나마 그려낸 것이라고 .. 더보기
日日是好日 동트는 새해, 일출을 찍어보리라 하였건만 지난 밤 송년을 지샌 단촐했던 와인 몇잔이 좀 과했는지 눈이 뜨니 해는 이미 중천이다. 이 겨울, 추위를 버겁게도 참아내어 겨우 앙상하게 뼈만 남아버린 집앞 나뭇가지 사이에 첫 날 해가 수줍게 걸려 있다. 뭔가 특별하게 다른 해는 아니다. 어제 그제도 꼭 같았던 바로 그 님이다. 그러다가 어제도 그제도, 아니 너무 오랫동안 햇님을 당췌 본 기억이 없지 않은가라는 생각에 어리석은 확신은 주저거릴 수 밖에. 그러니 신묘(辛卯)년 마지막 날엔 꼭 확인하리라. 그 같은 해가 매번 새해마다 뜨고 또 뜨는 것인지를. 벌써부터 제법 의젓하게 혼자서 조부모님께 새배를 올리는 녀석이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빨라 자라버리는 것이 못내 씁쓸하다. 이제 몇 해가 겨우 지나면, 봉.. 더보기
2010 Sunflower Carol 이모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책을 엄마와 그대로 따라해 본다. 해바라기 씨를 사다가, 돌아와서는 뒷마당 잔디밭 흙을 조그만 손으로 캐서 담았다. 짓궂게도 잦았던 이번 겨울비 덕에 몇일이나 흙속에 숨어 지내던 지렁이 한마리가 나타나더니, 녀석은 놀라서 들던 삽을 내던지고서는 달아나 버린다. 애궂은 계란 한판을 깨서 화분을 만들고, 예정에 없던 계란말이가 저녘상으로 올라온다. 너무 적게도, 너무 많이도 안되고 딱 적당하게 물을 주고 좋은 햇볕을 맞으면 아기같은 씨가 죽지 않고 잘 자란다는, 책 속에 그 말이 사실일지는 두고 보아야 알 일이다. 왜 하필 오늘이어야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일년, 흐트려 놓기만 한 많은 일들을 차분히 정리하던 오늘, 평소보다도 말을 아끼고 조용히 하루가 마치기.. 더보기
고해성사 참회의 시간이 돌아왔다. 매주 한권씩 52권의 책들을 읽겠다 얼토당토 부푼 꿈을 안고서는 기껏 열댓권 정도 힘겹게 읽었다. 시간이 없어서라는 뻔한 거짓말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한 해였다고 궁색하게나마 변명해 본다. 아침마다 30분씩 만이라도 꼭 운동을 하자 으쌰으쌰 정초에 끊었던 헬스 회원권은 얼마 못가 'LA Fitness'사에 매달 상납하는 생뚱맞은 기부금으로 전락한지 오래고, 그 댓가로 결국 12월 대부분의 날을 독감으로 앓아누워 보냈다. 이제는 변명하는 것도 귀찮다. 잘못했어요. 다음에는 잘할게요. 무슨 어린아이도 아니고, 매해 이게 무슨 짓이람. 차라리 앞으로는 신년 다짐이란걸 아예 하지를 말까부다. 스스로에게 미안해 하는 것도 이젠 슬슬 지겨워진다. 사람들이 모두 변한다는 구태의연한 말은.. 더보기